여당 막판 ‘읍소 전략’…‘천막당사의 추억’ 재연 기대

2024-04-03 13:00:03 게재

2004년 박근혜 “진정으로 과거 반성” 엎드려 기사회생

한동훈 “고개 숙여 호소” “개헌 막아달라” 연일 ‘읍소’

“수도권·PK 접전지 효과” “정권심판론 커 영향 없어”

4.10 총선을 1주일 앞둔 3일 국민의힘이 막판 선거전략으로 ‘읍소’를 택한 모습이다. 정권심판론이 득세하면서 판세가 기울었다는 분석이 잇따르자 “부족했다” “탄핵·개헌을 막아달라”며 보수층의 결집을 호소하고 나선 것. 20년 전인 17대 총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천막당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천막당사’ 효과가 재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주 성안길 방문한 한동훈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을 찾아 시민들에게 여당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민 기자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 한나라당은 참패 위기감에 젖어있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다가 역풍이 불었고,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차떼기 정당’이란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50석도 힘들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때 등장한 박근혜 대표는 당사를 매물로 내놓고 허름한 천막당사로 옮겼다. 박 대표는 천막당사에 입주하면서 “국민이 우리의 진심을 받아줄지는 미지수지만 진정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새 출발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국민이 받아주길 바랄 뿐”이라고 읍소했다. 박 대표는 이후 84일간 전국을 돌며 허리를 숙이고 손을 맞잡았다. 읍소는 통했다. 기권할 듯 했던 보수층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면서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었다. 읍소를 통해 참패를 면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4.10 총선을 눈 앞에 둔 국민의힘은 명품백·이종섭·황상무·의정갈등 등 정권심판론을 키우는 악재가 잇따르면서 판세가 기울었다는 분석이 잇따르자, 막판 선거전략으로 ‘읍소’을 택한 모습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저희의 부족함, 잘 알고 있다. 실망을 드린 일도 적지 않다.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고개 숙여 국민께 호소드린다”(3월 28일) “국민의힘에, 정부에 부족한 거 있다 생각할 것 같다. 저도 인정한다”(3월 31일) “우리 정부와 여당이 부족한 점이 많을 것”(2일)이라며 연일 반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이재명·조국이 200석이 넘는다면 정권 탄핵만이 아니라 개헌으로 헌법에서 ‘자유’를 빼는 게 가능해진다. 대한민국의 체제를 바꾸려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후 ‘개헌·탄핵을 막아달라’는 취지의 언급을 반복하고 있다. 야권이 200석을 넘기면 개헌·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보수층의 위기감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야권이 200석을 넘기면 △개헌 △대통령 탄핵소추 △대통령 거부권 무력화가 가능해진다.

여당의 ‘읍소’가 20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통할까. 보수층 결집 효과가 어느정도 있을 것이란 전망과 정권심판론이 워낙 거세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예상이 엇갈린다. 최수영 시사평론가는 2일 “야권이 개헌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를 흔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 보수층이 결집할 수 있고 투표를 포기하려던 합리적 중도층도 ‘그러면 안 되지’라며 투표에 나설 수 있다”며 “수도권과 PK(부산·울산·경남) 접전지역을 중심으로 10~15석 정도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정권심판론이 전체 선거판을 뒤덮고 있어서, 지금와서 읍소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2004년 박근혜와 2024년 한동훈이 보수층에서 갖는 상징성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한 위원장은 둘째치고 윤 대통령이 먼저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야하는데, 그런 모습이 없는 것도 (여당의) 읍소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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