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끝났다" 부패 척결 나선 말레이 국왕

2024-04-05 13:00:34 게재

부패방지위원장 "임무 수행"

총리도 나서 대대적 사정 바람

말레이시아의 이브라힘 알마훔 이스칸다르 국왕이 부패 척결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사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현지 매체 더스타에 따르면, 이브라힘 국왕은 지난 2일 왕궁에서 아잠 바키 부패방지위원회(MACC) 위원장에게 꿀을 선물하며 “허니문은 끝났다. 이제 벌을 잡으러 가라”고 말했다.

취임 초기 정치적 밀월을 뜻하는 ‘허니문’ 기간이 다 지나간 만큼 벌에 비유한 부패 사범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는 의미다.

이브라힘 국왕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를 소개하며 “통치 기간 비리와 싸움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왕의 지시를 받은 아잠 바키 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왕의 지시는 부패의 위협에 맞서 싸우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모든 계층의 사회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전투”라면서 “임무 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도 부패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이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을 맞췄다. 안와르 총리는 특정 부서의 수장들이 아래 직원의 잘못을 은폐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그런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적발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세관 직원들의 부패 행위로 인한 국고 손실이 20억링깃(약 57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에 연루된 직원을 과감하게 처벌한 관세청장의 용기를 칭찬하기도 했다.

MACC는 지난주 뇌물을 제공받고 수년간 담배, 주류 등의 밀수를 도운 혐의로 세관 직원 34명을 체포했다. 용의자들은 MACC, 내국세청, 네가라 은행이 합동으로 실시한 특별 작전 코드인 ‘작전 삼바 2.0’으로 체포됐다. 수사관들은 이들이 씹는 담배, 담배, 주류, 건강 제품 및 차량 부품의 밀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조직으로부터 470만 링깃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MACC는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전 총리와 그의 아들, 측근 등의 부패 혐의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브라힘 국왕은 조호주 술탄(최고통치자) 출신으로 지난 1월 31일 말레이시아 제17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말레이시아는 9개 주 최고통치자가 돌아가면서 5년 임기 국왕직 ‘양 디-페르투안 아공’을 맡는다.

국왕은 국가 통합의 상징적 존재지만, 최근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역할이 확대돼 왔다. 총리의 의회 해산 요구를 거부할 수 있고, 단독 과반 의석 확보 정당이 없을 경우 다수 의원의 신임을 받는 사람을 총리로 지명할 권한을 가진다.

말레이시아 최고 갑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브라힘 국왕은 취임 2개월이 지나면 자신의 방식으로 본격적인 통치에 나서겠다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그는 취임에 앞서 부패 척결 계획을 밝히고 MACC에는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김상범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