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피 사기범, 12년만에 덜미

2024-04-18 13:00:14 게재

쿠웨이트서 검거, 3개국 공조로 송환 … 범죄 피의자 4000여명 국외 도주

12년 전 30억원대의 사기 범죄를 저지른 후 쿠웨이트로 도주한 50대 남성이 3개국 공조로 덜미를 잡혔다.

경찰청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수배됐던 50대 남성 A씨를 17일 오후 5시 30분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강제 송환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1년 5월께 국내 모 건설사의 쿠웨이트 법인으로부터 건축 자재 납품을 요청받은 사실이 없음에도 허위 발주서를 작성한 뒤 마치 재발주할 것처럼 피해자를 속여 277만달러(약 30억원)를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A씨가 2012년 9월 쿠웨이트로 도주하자 경찰은 A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서를 발부받는 한편 쿠웨이트 경찰과 함께 추적에 나섰다.

경찰청이 18일 30억원 가량의 사기 범죄를 저지른 후 쿠웨이트로 도주한 50대 남성 A씨를 12년 만에 국내로 송환했다. 사진 경찰청 제공

경찰청에서 제공한 단서를 토대로 소재를 추적해온 쿠웨이트 경찰은 올해 3월 27일 은신처를 발견했고, 잠복 끝에 외출을 위해 나서던 A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양국간 직항편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우리 호송관이 쿠웨이트 경찰로부터 신병을 인수했다. 경찰은 주태국 대한민국 대사관에 파견 중인 경찰주재관과 한국 경찰청에 파견된 태국경찰 협력관의 도움을 받아 태국 이민국의 지원을 받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해외로 도주해 장기간 숨어 지내던 피의자를 한국·쿠웨이트·태국의 삼각 공조를 통해 성공적으로 검거·송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사기·마약 등 민생침해 범죄를 저지른 주요 도피사범에 대한 집중검거와 송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경 초월한 범행 수법도 증가 = 최근 마약·금융사기·사이버범죄가 국경을 초월해 범행이 이뤄지고 피해도 커지고 있다. 특히 피의자들이 국내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해외로 도주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마약이 주입된 음료를 나눠준 일명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사건의 주범 이 모씨를 범행 8개월여 만에 중국에서 국내로 송환됐다. 이씨는 2022년 10월 중국으로 출국한 후 현지에 머무르며 국내외 공범들에게 필로폰과 우유를 섞은 이른바 ‘마약음료’의 제조·배포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이씨가 중국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인터폴을 통해 적색수배를 내려 소재를 추적했다. 동시에 주중대사관 경찰주재관을 통해 중국 공안부와 핫라인을 가동했다. 한중 수사당국의 노력 끝에 이씨는 사건 발생 52일 만인 지난해 5월 24일 중국 현지 공안에 의해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검거됐다. 한중 경찰은 검거 이후 이씨의 신병 처리 방향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지난 1월에는 요양급여비 46억여원을 횡령해 해외로 도주한 후 필리핀에서 검거된 전직 국민건강보험공단 팀장 최 모씨가 국내로 송환됐다.

2022년 9월 필리핀으로 도피한 그는 여러 섬을 여행하며 골프를 치는 등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횡령 자금은 대부분 가상화폐로 환전해 수사기관의 자금 추적을 따돌리기도 했다.

경찰은 약 1년 4개월간 추적한 끝에 최씨가 필리핀 마닐라 고급 리조트에 투숙 중인 것을 확인하고, 지난 9일 현지 경찰과 함께 잠복 후 급습해 검거했다.

◆보이스피싱·전세사기·마약사범부터 검거·송환 =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도피사범 검거·송환에 역점을 둬 각국 경찰 등 법집행 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지난해만 470명의 해외 도피사범을 검거해 국내로 송환했다. 하지만 1월말 현재 전국 수사부서의 수사 대상 피의자 중 4225명이 해외 도피 중이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1491명으로 가장 많았고, 필리핀 670명, 미국 548명 등 순이었다.

경찰청은 올해 주요 국외도피사범에 대한 집중관리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보이스피싱·전세사기 등 악성 사기나 마약 등 중독성 범죄 주요 사범을 ‘핵심’ 등급으로, 국가수사본부(국수본)·수사관서에서 매우 중요한 국외도피사범으로 선정한 자를 ‘중점’ 등급으로 정했다. 이외 중요 국외도피사범은 ‘일반’ 등급으로 나눠 검거와 송환 역량을 집중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도피범의 행각이 날로 진화하고 있지만, 이들을 끝까지 추적해 어떻게든 송환해 국내 사법체계 내 정당한 심판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찰청은 일대일 국가 공조를 넘어 인터폴 사무총국의 각 죄종별 공조 자원과 국수본 각 수사 기능을 연계해 현안범죄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 공조 수사는 국제형사사법공조와 인터폴을 통한 방식으로 나뉘어 진행한다.

형사사법공조의 경우 공조요청서가 검찰은 물론 법무부와 외교부를 거쳐야 한다. 해외 절차까지 고려하면 과정이 복잡하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인터폴을 통한 국제 공조는 인터폴 사무총국과 직접 가입국 경찰에 공조 수사를 요청하면 가능해 신속하게 절차를 밟을 수 있어 국제공조의 핵심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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