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24-04-24 13:00:01 게재

바둑을 왜 배워? AI한테 시키면 백전백승인데

구글의 딥 마인드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1995년 학부생 시절 동료에게 바둑을 배웠고 성취도 빨랐지만 체스에 비해 느린 편이라 직접 바둑을 두는 대신 인공지능으로 바둑을 정복하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허사비스가 바둑을 좋아했지만 직접 바둑을 정복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대신’ 정복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재성(중앙대 AI학과 교수)

나를 대신해 문제 해결할 대리자가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특성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제의 특성을 모르는 채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럼 인간은 잘 알지도 못하는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걸까?

인간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처럼 행동하는 대리자를 만든다면 굳이 문제의 조건이나 특성을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썩지 않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본질이 나를 대신할 대리자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대리자는 나를 위해 존재하니 나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대리자가 초래할 결과가 나의 뜻과 일치하려면 대리자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대응할지 예상해야 하고, 그 대응에 따라 대리자가 다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기껏 학교에 갈 대리자를 만들었는데 대리자가 학교로 안 가고 놀러 가버리면 대리자를 만든 의미가 없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대리자를 세상에 풀어놓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해두어야 한다. 바둑이나 오목의 ‘수읽기’와 비슷하다.

즉 인공지능 대리자를 만드는 일은 수읽기가 가능한 행위자를 만드는 일과 같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대리자라는 혁신적인 생각을 떠올린 천재라고 해도 대리자가 세상에 나갔을 때 벌어질 모든 일을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시뮬레이션이 등장한다. 대리자가 세상에 나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없으니 차라리 세상을 모사한 컴퓨터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대리자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한다. ‘행위자’와 ‘환경’ 중에서 ‘환경’을 만들어보는 일에 해당한다.

우리의 예제에서 환경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환경을 잘 만들 수 있다. ‘대리자-행위자’와 ‘세상-환경’을 만들어놓으면 대리자가 그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실제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지 미리 알 수 있다.

이제 와서 보니 대리자를 만드는 건 그냥 부수적인 소득인 것 같고 복잡한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주식 인공지능을 만들고 대리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본 후 그대로 따라 하면 백만장자가 되는 건가?

내성적인 아이, 내면세계에 집중하는 아이

안타깝지만 주식 인공지능을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 백만장자가 될 수는 없다. 앞서 설명한 내용을 되짚어보자면 결국 수읽기, 대리자,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실행 가능한 결과를 미리 가늠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 적용해본다는 말이다. 설명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어떻게 될지 예상해보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행동을 선택한 후 현실에서도 그 행동을 따라 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행동하거나 말하기 전에 한참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 자극을 받았을 때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조심성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보통 이런 성격을 ‘신중하다, 생각이 깊다, 말이 별로 없다,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내면세계에 집중하는 힘이 강한 성격으로 내향적인 사람의 특성이다.

만약 우리 아이가 천성적으로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는 데 익숙하고, 어릴 때부터 그 안에서 자신을 대입한 대리자가 어떻게 될지 관조하는 습관이 있다면 인공지능 전공자의 관점에서 그 아이는 인공지능에 대한 소양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얻기보다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역시 내면세계에서의 시뮬레이션과 진배없다.

그러니 아이가 내성적(내향적)이라면 인공지능 전공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이런 성격은 인공지능 전공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허사비스가 밝힌 그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인용해본다.

“나는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