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는 한국 대중음악의 산 역사, 그 뿌리 찾기의 시작”

2014-04-04 15:01:15 게재

인사이드북(人 side Book) - <대중가요 lp 가이드북>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디지털 음원 시대 속에서 LP 문화가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LP가 옛 가수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벗고, 지 드래곤, 장기하, 2AM 등 젊은 가수들도 잇따라 LP 음반을 선보이면서 화제를 몰고 왔었다. 이러한 음반 시장의 흐름 속에 반가운 책 한권이 최근 출간됐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가 펴낸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이다.



 
못 말리는 수집벽, ‘절판소장’이란 별명까지 얻어
 이번 책을 소개하려면 그의 유별난 수집벽을 앞서 이야기해야 한다. ‘호모 콜렉투스’(수집하는 인간)라는 인류가 있다면 바로 자신일 거라는 최규성 씨. 그의 수집 인생은 소년 시절부터 시작됐다. 특히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 KBS강릉 어린이 합창단을 하며 음악과 공연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단오제와 같은 지역 축제 등도 다양해서 문화적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죠.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LP와의 첫 조우를 최 씨는 아직도 기억한다. “73년 겨울이었어요. 친구 집에 놀러갔다 딥퍼플의 ‘하이웨이스타’를 처음 들었죠. 그 때 전율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간 들었던 라디오 음악과는 다른 차원의 음악이었죠. ”
 그 때부터 LP를 모으기 시작했으니 그의 인생 대부분을 LP 콜렉터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해외 팝보다 한국 가요에 무게를 두어 LP를 수집했다. “당시엔 해외 음악 을 환영하는 반면, 한국 음악을 무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오히려 트로트, 포크, 그룹사운드 등 가요가 더 좋았죠”
 대학시절 수천 장의 음반을 분실하는 사고 이후 LP와 잠시 연을 끊기도 했었다. 하지만 제 버릇 어디 남을 줄까. 90년대 초엔 PC통신 AV 동호회 활동을 하며 LD(레이저디스크) 수집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당시 구하기 불가능한 절판 레이저 디스크를 잘도 구해온다고 해서 ‘절판소장’이라는 닉네임도 붙었다. 그러다 동호회 회원 집에서 우연히 들은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LP음반으로 들으면서 다시 LP수집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전국의 음반가게, 고물상, 헌책방을 드나드는 것은 기본이었다. 기자 시절엔 해외 출장을 나갔다 하면 들고 올 손이 모자라 동료들의 손을 빌릴 정도로, 그의 수집 범위와 양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심지어 출장 차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북한 음반을 찾고 다녔다고 한다.
 덕분에 40년 수집 인생은 그를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중음악 자료 수집가이자 평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2만 여장에 가까운 LP를 비롯해 LD, CD는 물론 가수의상, 트로피, 책, 포스터, 가요잡지, 사진 등 각종 음악자료만 10만점 넘게 모았다. 좋아하는 가수들뿐만 아니라 비주류, 주류 가수들의 자료까지. 아이돌의 얼굴이 새겨진 소주병까지 모셔두고 있으니 수집품의 범위가 얼마나 방대할지 짐작이 갈 것이다. 각종 대중음악 전시회도 그의 수집품을 빌려갈 정도다.



1. 신중현의 에드훠(Add4) '비속의 여인' 초반 1964년12월
 

신중현부터 싸이까지, LP로 읽어낸 대중문화
 그가 이번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기록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엔 대중음악에 대한 자료 보존이 아주 잘 되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엔 책 한 권조차 제대로 있지 않았죠. 가요사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음반들은 오히려 일본에서 구하는 게 쉬울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그간 그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지 못했던 겁니다”
  이때가 1999년경이었으니, 이번 가이드북은 15년간 바라왔던 그의 꿈 하나가 실현된 것이다.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은 한국 가요에 대한 그의 집요한 수집인생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1990년대 말, 일본인이 청계천에서 400만원에 사갔다는 풍문이 나돌았던 신중현의 1964년 데뷔앨범 ‘비속의 여인’부터, 싸이 ‘강남스타일’의 외국판 LP, 조용필의 ‘HELLO'까지 191장의 대중가요 명반들을 한 권에 담았다.
 “대중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명반, 포크, 그룹사운드, K POP 등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음반들을 엄선했습니다. 우선 음반에 대한 팩트 전달에 주력했죠. 누구나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장황한 이야기는 배제하고, 음반과 제작자 그리고 가수의 이야기를 쉽게 설명하고자 했죠”
  책은 대중음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앨범들을 카테고리별로 엮었다. 특히 시인 김지하의 옥중 인터뷰 육성이 수록된 옥중 음반, 한국 최초의 해외 진출 걸 그룹이라 할 수 있는 김 시스터즈, 최초의 남녀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과 조성희 데뷔음반 등 희귀명반들의 실물 재킷, 오리지널 음반들을 만나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시각적인 즐거움도 빠질 수 없다. 2천장에 가까운 앨범 재킷 앞, 뒤 사진, 음반, 인서트는 실물 LP의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직접 사진 촬영을 했다. LP 입문자들에게는 함께 수록된 200여개의 추천음반도 알짜배기 정보가 될 것이다.


2. 히키신 초반 오리지널 재킷

 
 LP의 부활,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그리움
 최규성 평론가는 LP를 ‘그리움의 문화’라고 말한다.
  최 씨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해졌지만, 그만큼 소통의 여유는 줄어들었죠. 소통에 대한 그리움,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그리움이 디지털 시대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 지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CD와 디지털 음원과 비교했을 때 선명함은 훨씬 뒤떨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 잡음이 각박한 생활 속에 편안함과 여유를 주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빛바래 재킷 사진은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이것이 LP를 찾고 사랑하는 이유이다.

“앰프 전원을 켜고 LP를 돌린다. 소파에 앉아 LP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CD나 디지털 파일은 오래 들으면 두통을 호소하는 이도 있지만, LP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힐링의 소리를 준다” - 머리말 中

  최규성 씨는 이번 책을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 찾기와 같다’고 스스로 평한다.
.그는  “대중문화는 대중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대중의 기호가 오롯이 반영되는 문화는 그 시대의 삶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되죠. 100년의 나이테를 갖고 있는 대중음악이라는 큰 나무의 뿌리 찾기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것이 안 되어있다면 대중음악의 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이번 책은 그 뿌리 찾기의 일환이라 할 수 있죠”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한국 대중음악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보는 것, 이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말한다. 


3. 김민기 1집 화이트 재킷 1971년11월23일


4. 김추자 데뷔음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초반 1969년

 

 

남지연리포터 laman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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