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지투기, 이참에 뿌리 뽑아야

2021-03-12 11:51:15 게재
고영곤 협동조합 발전연구원장

"중앙부처 재산공개 대상자 약 1200명 가운데 거의 절반에 가까운 533명이 본인, 배우자 또는 자녀명의(부모제외)로 논, 밭, 과수원 등 총 205만평의 농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P씨는 11필지 1만8000평의 농지를 '고향사람'이라고 밝힌 15명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등록했고, 적지 않은 고위공직자들이 동생 동서 처남 고모 등의 명으로 농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의장 P씨는 경기도 여주 일대에 20여 차례에 걸쳐 구입한 토지 43필지 12만여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종류의 뉴스들이 1993년 주요 중앙 일간지를 장식했었다. 공직자재산공개제도가 도입되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LH공사 직원들이 제3기 신도시지역에서 농지투기를 벌인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건이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대통령까지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실 농지투기는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신도시건설, 주택단지 조성 등 개발계획이 발표될 때 마다 인근지역의 많은 토지가 이미 외지 투기꾼들의 손에 넘어간 뒤라는 보도를 들으면서 살아왔다.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직접 농지를 경작하는 농민이 아니면 농지매입은 법적으로 금지돼왔다. 어쩌다 빙산의 일각처럼 공직자 농지투기가 드러나면 이들을 구속하거나 처벌하기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위장전입, 가짜 영농계획, 차명거래 등 온갖 불법 편법을 동원하여 법망을 피해 나갔다.

단지 LH직원들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눈치 빠른 중앙과 지방의 관리나 의원들, 언론인, 학자, 전문가, 일반인 할 것 없이 남보다 먼저 개발정보를 접하기만 한다면 땅 짚고 헤엄쳐서 돈 버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심지어 정부지원을 받아 설립 운영되는 농업법인들도 농지 투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농사를 짓겠다며 농지를 사들였다가 이를 되팔아 차익을 노리는 사실상의 농지투기 전문 농업법인들이 적지 않음이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 밝혀졌다. 부산의 한 농업법인은 허위 영농계획서로 농지 16필지를 사들여 짧게는 하루, 길게는 5개월 동안 보유하다가 되팔아 수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이처럼 농업법인의 간판을 쓴 농지투기법인이 늘어난 것은 농업부문에 도시자본 유입을 목표로 농업법인의 비농민 출자한도를 90%까지 허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민식량공급을 명분으로 절대농지, 농업진흥지역 등의 규제로 농민들은 재산권 제약을 받아왔다. 농지가 비농업용 토지로 지목변경이 되는 순간 땅값이 치솟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농지에 개발이익이 발생한다면 이는 재산권 제약을 견디며 농지를 지켜온 농민들의 몫이어야 한다. 자금력과 정보력이 우세한 투기꾼들이 편법과 탈법으로 이를 가로채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농지투기가 근절되지 않았던 것은 이를 감시하고, 처벌할 위치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투기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이리라는 의구심은 근거 없는 것일까.

이번에 불거진 LH직원들의 부도덕한 사건을 계기로 뿌리 깊은 농지투기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엄정한 책임추궁과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 토지개발에 따른 개발이익이 투기꾼 몫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검토돼야 한다.

우선 현재 토지보상가격 책정기준과 절차가 적정한지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토지 보유기간이 짧을수록 고율의 양도소득세, 예컨대 3년 미만이면 100%를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그래야 자금력과 정보력이 우세한 사람들이 투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장기간 농지를 지켜온 농민들을 투기꾼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