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함께 위험 해소

중소규모 기업도 대기업 수준의 안전경영 실천

2023-07-28 11:26:16 게재

작업 특성 맞춤형 안전관리 … 체력단련실·휴게실 등 높은 안전투자, 직원 아이디어 적극 수용

제주 첫 위험성평가 도입해 산재예방 선도하는 '경림산업'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의 가장 큰 현안은 중소기업의 산업재해 문제다. 산재 대부분이 이들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산재 사망사고 통계를 보면 2022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망사고자수는 모두 874명이다. 이중 50인 미만 사업장이 707명으로 80.9%를 차지했다.
이는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자체적으로 작업환경을 개선하거나 안전관리 수준을 끌어올리기 상당히 힘든 여건에 있기 때문이다. 중소규모 산업현장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도 2013년 중소기업으로서는 도전이 쉽지 않은 위험성평가를 선도적으로 도입한 기업이 있어 화제다. 지난 18일 화제의 경림산업을 방문해 그 비결을 들어봤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경림산업(대표이사 김기형)은 28명의 임직원이 비드법 폴리스티렌단열재(건축물 단열판)와 농·수축산물 스티로폼 상자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경림산업 여성 작업자가 천장 크레인으로 주입구로 이동시킨 원료자루를 철재 받침대에 올려 놓고 아랫부분 매듭을 풀고 있다. 철재 받침대 설치를 처음 제안한 그는 원료자루가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경림산업은 1979년 설립 이후 1981년 새마을공장, 1983년 유망 중소기업체, 1986년 한국산업규격(KS)표시허가 취득, 2007년 성장 유망중소기업, 2008년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선정 등 꾸준히 성장해왔다.

경림산업은 현재 임직원 1인당 매출이 3억원에 달하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장 배경은 소규모 기업이면서도 대기업 이상의 안전경영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림산업은 지난해 1억7443만원, 2021년 5억6549만원, 2020년 1억1745만원, 2019년 2억1434만원의 안전보건 예산을 투입했다. 대기업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소기업으로선 적지 않은 투자다.

경림산업은 2009년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 18001) 인증을 획득했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최적의 작업환경을 조성·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직원과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기업 내 물적·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경림산업은 자타가 공인하는 안전한 일터로 꼽힌다.

경림산업이 펼치고 있는 안전관리의 핵심은 작업특성에 따른 맞춤형 관리다. 회사는 모든 작업공정에 맞춤형 작업표준서를 마련해 노동자가 그에 맞게 작업을 하도록 했다. 또 설비별로 위험요인을 분석한 후 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이 해당 설비의 위험요인과 사고유형을 인지한 상태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림산업 생산공정에는 크레인 발포기 성형기 절단기 포장결속기 금형 지게차 압력용기 등 다양한 기계설비와 장비가 동원된다. 그만큼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 부딪힘, 끼임, 떨어짐, 넘어짐 등 주요 재해유형에 노출된다.


◆제주지역 1호로 위험성평가 도입 = 경림산업은 2013년 제주지역 제조업체로는 처음으로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에 선정됐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해당 유해·위험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 가능성과 중대성을 추정·결정하고, 감소대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사업주가 주체가 되고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관리감독자, 안전·보건 관리자 또는 안전보건관리담당자, 대상 작업의 노동자가 참여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실시한다.

눈여겨볼 점은 경림산업은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및 안전·보건관리자 선임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림산업은 선제적으로 이들을 선임해 안전한 일터 조성에 힘쓰고 있다.

경림산업은 지난 1월 직원들과 협의해 '안전보건경영방침'을 정하는 등 직원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직원 대상 안전교육도 한층 강화했다.

경림산업의 생산공정은 원료입고-예비발포-발포립숙성-성형-건조-포장-제품출고로 이어진다. 공정에는 크레인 발포기 성형기 절단기 포장결속기 금형 손수레 지게차 화물자동차 압력용기 등 다양한 기계설비와 장비가 동원된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근골격계 질환, 부딪힘(충돌), 끼임(협착) 떨어짐(추락) 넘어짐(전도 미끄러짐) 감전 화재폭발 화상 베임 소음 질식 등 주요 재해유형 대부분에 노출될 수 있다. 이렇게 위험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안전의식이다.

경림산업은 상설 교육장을 개설·운영하면서 사내 교육과 외부 위탁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의 안전의식을 높이고 있다. 또 정기적으로 시청각교재 등을 활용한 교육을 실시해 직원들의 참여와 관심을 높인다. 정기교육 외에도 매월 1일 전직원 안전보건 결의대회를 통해 위험성평가와 안전보건의식을 높이고 있다.

이 회사는 특히 관리감독자와 안전보건관리자를 외부전문기관에 위탁해 양질의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받은 안전교육을 사내에 전파토록 해 노동자 개개인의 안전의식까지 높이고 있다.

안전보건관리담당자인 문병철 차장은 "정기적으로 각 공정별로 위험성평가를 통해 위험요인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함으로써 재해를 예방하고 있다"면서 "신규설비 등을 대상으로 한 수시평가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규모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활동이 쉬운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 회사는 사업주가 안전보건에 관심을 두고 있고, 안전담당자들이 기술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경림산업은 3월 8일 위험성평가의 정기평가를 실시했다. 정기평가에서 회사는 생산팀 3건, 총무·영업팀 6건 등 총 9건의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했다.

1992년 경림산업에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입사한 고동린 전무. 고 전무은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산재예방달인(2012년, 고용노동부)에 선정되고 철탑산업훈장(2018년)을 수훈했다. 그의 책상(사진 왼쪽 아래)에는 수십년간 사용한 안전보건에 대한 '족보'(가이드)가 수북하다.

◆"위험요인, 직원이 가장 잘 안다" = 2021년 11월 경림산업은 사내 복지관을 증축했다. 컨테이너를 활용해 운영하던 교육장에 4억원을 투자해 증축한 복지관은 위험성평가에 대한 대표이사(CEO)의 진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복지관에는 공정 특성상 가장 쉽게 발병할 수 있는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운동기구를 갖춘 체력단련실이 설치됐다. 최신 설비를 갖춘 교육실, 남녀 휴게실 그리고 수면실 등을 갖췄다.

문 차장은 "재해예방을 위한 투자가 결국 수익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면서 "하지만 기업, 특히 소기업이 이를 인식하고 안전예산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림산업은 한발 더 나아가 직원들이 사업장에서 발견한 위험요소와 그 개선방법을 제안하는 안전제안제도를 운영한다. 직원들은 2017년 이후 지난해까지 49건의 아이디어를 제안해 스스로 중대재해 예방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회사는 위험요인을 제거한 우수 제안에 대해 포상했다.

또 다른 안전보건관리담당자인 임기현 상무는 "작업장 위험요소는 해당 공정을 담당하는 직원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면서 "직원 제안으로 작은 투자로도 큰 효과를 거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림산업 작업장에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체 공정의 시작점인 원료 입고장에는 600kg의 원자재가 담긴 자루들이 쌓여있다. 무거운 자루를 효과적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천장 크레인'을 설치한 덕분에 여성 작업자 혼자서도 충분히 입고장을 관리할 수 있다.

여성 작업자는 "600kg 원료가 크레인에 매달려 고정돼 있지만 투입구에 쏟아붓기 위해선 아랫부분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자루 아래로 몸을 숙일 때면 내게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낄 때가 많았다"면서 "철재 받침대를 만들어 자루를 그곳에 올려놓고 매듭을 풀면 크레인에 문제가 생겨도 추락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제안을 즉시 수용해 받침대를 설치한 후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업장 곳곳에선 강화 스티로폼으로 제작한 조립식 계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계단들은 공장 바닥 곳곳의 배관과 전선 위에 설치돼있다. 작업장 이동 중에 배관이나 전선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의 제안을 회사가 수용한 것이다.

경림산업은 또 재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의 불안전 조건이나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으로 발생할 뻔한 '아차사고' 사례를 발굴해 위험성평가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위험요인에 대한 개선활동 교육을 실시한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회사와 직원들이 발굴한 사례는 38건이다.

경림산업은 일상적 생산활동 외 요인에 의한 안전사고를 차단하기 위해 '안전작업허가서' 제도를 철저하게 운영한다. 안전작업허가서란 안전감독관이 현장의 안전상태를 확인한 후 최종적으로 작업을 허가하는 내용의 문서를 말한다. 안전작업허가서는 외부업체의 작업방법과 내용을 현장에 있는 안전감독관이 확인한 후 발급한다. 경림산업은 올해 15건의 안전작업 허가서를 발급하고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임 상무는 "일상적인 생산공정을 제외한 모든 활동을 안전작업허가서 발급 대상으로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직원뿐 아니라 가족건강에도 관심 = 경림산업은 산재예방과 함께 노동자들의 건강증진에도 노력하고 있다. 회사는 2012년부터 매월 회사를 방문한 간호협회 소속 간호사의 보건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보건상담에서는 체지방, 골격근량 측정, 혈압, 혈당 등을 확인한다. 또 2013년부터 담배를 피지 않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 60만원의 금연수당을 지급한다.

회사는 또 1992년부터 건강관리협회와 건강검진에 직원 가족을 포함하는 협약을 맺고 개별적으로 10만원의 건강검진비를 매년 지원한다. 특히 제주도광역정신건강센터의 지원을 받아 전직원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상담과 혈전상태측정, 우울증·스트레스 해소 교육도 실시한다.

1992년 안전관리책임자로 입사해 안전보건경영을 주도하고 있는 고동린 전무는 "전사적인 위험성평가에 대한 노력은 안전하고 건강한 사업장으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높은 장기근속률을 높이고 내국인 100% 인력관리를 가능하게 했다"면서 "안전보건 중심 경영은 결국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기업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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