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사서 길을묻다│인터뷰 - 김상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기술원

생명과학·공학 분야 전문도서관 성장 이끌어

2024-01-04 10:53:19 게재

지난해 이병목 참사서상 수상 … 전자저널 출판사와 구독료 협상·실험 기록하는 연구노트 중요성 강조

지난해 이병목 참사서상은 김상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기술원(문헌정보학 박사)이 수상했다. 김 책임기술원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도서관을 개관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해온 것은 물론, 개인적인 학술 및 국제 교류 활동으로 한국도서관상 등 도서관 분야의 다양한 상을 수상해왔다.

김상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기술원. 사진 이의종

지난달 6일 김 책임기술원을 만나 전문도서관의 시작부터 성장 과정과 함께 개인 연구 및 국제 교류, 미래 사서의 역할 등에 대해 들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어떤 곳인가.

생명과학(Bioscience)과 생명공학(Biotechnology)을 연구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생명과학은 기초 과학 분야이며 생명공학은 응용과학 혹은 공학 분야로, 연구 범위가 인간에서부터 식물 동물 미생물 바이러스 등 광범위하다. 유전자 편집이나 플라스틱 문제 등도 연구 분야에 속하고 제약 분야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때도 지원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 때 영장류 등 실험동물을 확보해서 기업에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쳤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서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부설 기관이었다가 1990년부터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터를 잡았다. 대전으로 옮기기 직전에 입사했는데 이전하면서 도서관을 처음 설립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자료가 없어서 연구를 위한 인쇄저널(학술논문)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그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CD-ROM이 등장했고 이를 기반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연구원에게 제공했다. 또 도서관이 확보하지 못한 자료들은 다른 도서관을 통해 수집하는 등 필요한 정보자원을 확보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2000년대 들어 전자저널 시대를 거치면서 작지만 강하고 실용적인 생명과학 및 생명공학 분야 도서관으로 발전했다. 최근엔 인쇄저널을 다른 도서관에 기증 등을 한 이후 확보된 공간을 회의실과 독서나 행사를 위해 리모델링해 휴식과 정보 이용이 공존하는 전문도서관으로 변모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도서관. 사진 이의종


■전자저널 관련, 출판사와의 구독료 협상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고 들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전자저널 구독이 일반화됐다. 전자저널을 펴내는 출판사들과 협상을 해서 도서관의 구독료를 결정하게 되면서 여러해 동안 협상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출판사들과 협상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대학도서관과 전문도서관이 함께하는 전자저널 컨소시엄이 만들어졌다가 대학도서관들은 별도로 협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사태 때 고환율로 인해 감소한 인쇄저널 예산을 기준으로 구독료가 책정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독을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은 1% 내외 구독료를 지출하는 반면, 논문 생산량 혹은 전자저널 이용량은 3% 내외다. 논문 생산량 및 저널 이용량에 비해 저렴하게 구독하고 있는 편이지만 해마다 5% 내외로 인상되는 구독료를 두고 출판사는 더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 협상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구독료 지불에 달러 대비 환율도 중요하다. 중국 일본 등 달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모든 국가들이 환율 변동의 위험성을 안고 있어 도서관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

연구노트. 사진 이의종


■연구노트에 관한 논문을 집필했다고 들었는데 연구노트란 무엇인가.

연구에는 연구 윤리가 중요하다. 간혹 데이터를 위조하거나 변조 및 표절을 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또 저자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황우석 사태' 때 줄기세포 등 논문에 있는 내용이 실제 존재하는지가 논란이 됐다. 이후 2008년부터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연구노트 제도가 도입됐다. 연구노트에는 실험 제목에서부터 실험방법, 결과 데이터, 데이터에 대한 해석 등 연구자가 실험을 할 때의 과정과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날짜와 서명도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다.

연구 과정이 분쟁이 될 때는 주로 성공한 연구, 즉 '돈이 되는' 연구의 경우다. 연구노트를 꾸준하게 쓰고 있다면, 자신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주장해서 인정을 받거나 분쟁을 유리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아직 연구원들이 연구노트를 작성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 이에 연구노트 관련 논문을 작성하고 작성법을 외부 기관에서도 교육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안내책자 집필에도 참여하면서 연구노트의 중요성을 알리고 연구기록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섰다.

■개인적인 학술 활동과 국제 교류에 대해서도 들려달라.

일본 전문도서관협회에서 발표하는 등 꾸준히 논문을 집필해왔다. 전자저널 출판사들과 협상 과정에서 출판산업에 관심이 생겨 코로나19 사태 이후 '저널 출판'을 주제로 하는 논문 6편을 영문 학술지에 게재했고 올해 2편이 더 출판될 예정이다. 논문들은 다른 연구자 논문에 16회 이상 인용돼 국제 학술 교류에 기여했다.

2015년에는 제4회 아시아 전문도서관 국제 컨퍼런스를 한국에서 열면서 논문 심사위원장을 했다. 한류 등으로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에서 발표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많아서 외국인 참석자가 많았다. 소속 기관의 출장비 문제 등으로 외국에서 참석하지 못한 발표 예정자가 생겨 일정을 긴급하게 조정했던 아찔함이 있었고 이슬람 교인들을 위해 기도실을 갑자기 마련했던 경험이 있다. 또 과거 행사에 대해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는데 당시 심사한 논문과 포스터 등을 전부 모아 행사 자료집을 USB로 펴내는 등 공을 들였다.

■미래의 사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정보 기술은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엘스비어(Elsevier) 출판사는 학술 분야 논문 초록을 챗GPT3.5에 학습시켜 AI를 제품화한다고 한다. 구글은 AI에게 의료지식을 학습시켜 진단 정확도에서 의사를 넘어섰다고도 들었다.

기존엔 정보 생산자인 출판사와 이용자 사이에 도서관과 사서가 정보 매개자 역할을 했다. 이용자들은 도서관의 공간과 책으로 된 자료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인터넷 기반의 전자저널 시대가 되면서 도서관의 매개자 역할이 축소되고 이용자가 출판사와 직접 접촉하게 됐다. 도서관의 역할이 축소되면 사서의 역할도 줄어들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해야만 사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도서관은 정보 관련 기술과 매체가 진화하는 환경에 맞춰서 변신해온 역사를 지녔다. 챗GPT와 같은 최신 기술에 대해서도 사서들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면 생성형 AI 정보 시대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전 =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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