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의 공습’ 과일값 폭등에 상반기 물가안정 ‘흔들’

2024-03-12 13:00:02 게재

과일 물가상승률, 전체 물가상승률과 격차 ‘역대 최대’

지난달 과실 40.6% 상승률, 전체 평균보다 37.5%p ↑

사과 물가 상승률 71.0%로 역대 세 번째 70% 넘어서

작년 봄 이상저온·여름 폭염폭우·가을 병충해까지 겹쳐

정부, 할인 지원 등 안간힘 … 2%대 물가관리에 ‘비상’

과일 가격이 사상 최대 폭으로 오르면서 서민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다음 달까지 농산물 할인 지원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집행하는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 2%대로 묶어두려던 정부의 물가안정목표에도 비상이 걸렸다.

올해 과일가격 폭등은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깊다. 지난해 이상 기후로 흉작이 든 탓이다. 작년 봄철 이상저온과 여름 폭염과 폭우, 가을 병충해가 겹치면서 과일 생산량이 20~30%씩 급감했다. 햇과일이 본격 출하되는 가을쯤에야 ‘예년 작황’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가을 정상화’도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 분석이다.

과일값 고공행진 사과 등 과일 가격 오름세가 지속되는 1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물가상승률 둔화세에 찬물 = 지난달 과실 물가 상승률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간 격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만큼 다른 품목에 비해 과실 물가 부담이 컸다는 얘기다.

복숭아 물가 상승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과·배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과실 물가 상승률은 40.6%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1%)보다 37.5%p 높았다. 이 격차는 과실 물가 통계를 기록하기 시작한 1985년 1월 이후 약 40년 만에 가장 컸다. 기존 최대 격차는 1991년 5월의 37.2%p였다. 사실상 사상최대다.

지난달 과실 물가 상승률은 40.6%를 기록했다. 1991년 9월(43.7%) 이후 32년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표과실인 사과가 이상기온으로 수확량이 줄어 가격이 크게 올랐다. 여기에 대체제인 다른 과일 가격도 상승하며 가격난을 더 키웠다. 지난달 사과 물가 상승률은 71.0%로 1999년 3월(77.6%)과 작년 10월(74.7%)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70%를 넘었다. 사과 물가 상승률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간 격차는 67.8%p로 역시 역대 세 번째로 컸다.

배 물가 상승률은 61.1%로 1999년 9월(65.5%) 이후 24년 5개월 만의 최고치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의 격차는 58.0%p 벌어져 1999년 9월(64.7%p) 이후 가장 컸다. 복숭아 물가 상승률도 63.2%로 1976년 7월에 기록한 기존 최고치(61.2%)를 넘어섰다.

특히 귤값 상승률은 78.1%로 2017년 9월(83.9%) 이후 6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박(51.4%), 딸기(23.3%), 체리(28.0%) 등 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과일가격 당분간 상승세 전망 = 문제는 과일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최근 ‘금(金)사과’로 불리는 사과는 마땅한 대체 상품이 없다. 수입도 어려워 당분간 가격 부담이 불가피하다.

정부 관계자는 “수입으로 병해충이 유입되면 생산이 줄고 비용이 들어 가격만 올려 결국 소비자 부담을 더 키우는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물량 공급을 확대하고 할인 지원에 나서 서민 장바구니 부담 완화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근본대책도 아니고, 지원규모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는 올해 설 성수기에 690억원을 투입해 농축산물 할인 행사를 지원한 데 이어 이달과 다음 달에도 농축산물 납품단가 인하와 할인 지원에 모두 434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올해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은 1080억원이다. 다음 달까지 920억원을 쓰고 나면 상반기에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기후에 과일작황 급감 = 이같은 ‘과일값 폭등’ 국면이 이어지는 건 지난해 이상기후로 작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에는 이상 저온현상이 이어졌다. 이어 여름엔 폭염과 폭우, 가을에는 병충해 등의 악재가 겹쳤다. 작년 한해가 ‘이상기후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이때문에 주요 과일의 생산량이 20~30%씩 급감했다. 여기에 가격 상승세를 주도하는 사과, 배는 까다로운 검역으로 수입이 어렵다. 정부는 병해충 유입 등을 우려해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조치(SPS)에 따라 사과, 배, 복숭아 등 8개 작물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다른 나라가 이들 작물을 우리나라에 수출하려면 8단계로 이뤄진 수입위험분석 검역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현재까지 통과한 곳이 없다. 1992년 이후 미국 독일 뉴질랜드 등 11개국이 한국에 사과 수입 허용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통과에 실패했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 급등세가 이달 이후에는 점차 개선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고 일조량이 늘면서 출하 여건이 나아지면서 수급 상황이 좋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달부터는 딸기, 토마토, 참외 등이 출하된다.

하지만 이번 파동의 ‘본체’인 사과와 배는 저장량 부족으로 가을 햇과일이 출하되기 전까지는 가격 강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올해 물가안정목표에도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상반기 물가 목표를 2%대로 잡았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공급’ 탓에 당분간 3%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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