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헌법소원심판 청구 이후는

핵심쟁점 찬반 갈등…중기 ‘보건·안전 거부’ 인식 심어

2024-04-03 13:00:02 게재

중소기업들 ‘규정 명확화·차등 적용·처벌 합리화’ 주장

지난해 11월 창원지법, 기업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기각

“중기단체 야권과 관계악화로 총선 이후 어려움 예상”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헌법재판소 심판을 받는다. 시행 3년째인데도 ‘위헌성’ 논란이 이어진 결과다.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중소기업단체 9곳은 1일 헌법재판소에 중처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305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헌법소원 심판청구의 취지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중대재해처벌법 규정의 명확화 △평등원칙에 기초한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차등 적용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처벌 합리화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중기중앙회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소기업단체들은 1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중소기업단체 9곳과 중소기업·소상공인 305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왼쪽 네번째부터 배현두 수협중앙회 부대표, 김태홍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상근부회장,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배조웅 중기중앙회 수석부회장, 인성철 한국전기공사협회 회원부회장. 사진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사업주 처벌만 능사 아냐 = 중소기업단체들의 주장하는 ‘평등권 침해’은 ‘50인 이상 사업장’과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아무런 차등을 두지 않고 중처법을 일괄 적용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중처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는 명확성 원칙, 의회유보 원칙, 포괄위임금지 원칙, 과잉금지 원칙(직업수행의 자유)를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중처법 제4조 제1항 제1호) 등이 어떠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능력과 관계없이 광범위한 책무를 부과하면서 의무위반으로 중대재해 발생 시 중벌만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중처법 제6조 제1항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평등원칙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현재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도록 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형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대상은 현장 내 직접 행위책임자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감당해야 한다. 사업경영을 총괄한다는 관련성만으로 현장에서 사고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당사자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형벌체계의 균형을 현저히 상실했다는 주장이다.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만을 강조한다고 중대재해를 줄일 수는 없을 것”이라며 “1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과도한 처벌은 반드시 위헌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이전에도 중처법의 위헌성 심판 시도는 있었다. 많은 토론회에서도 위헌성 주장은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치사) 위반 혐의로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기소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에 대한 재판에서 정 회장 측 변호인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경영자 처벌 과도하지 않아 = 지난해 11월에는 중처법 위헌성과 관련한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창원지방법원 형사4단독 강희경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3일 두성산업 쪽이 신청한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기각했다.

두성산업 대표는 2022년 2월 독성물질이 함유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도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 16명에게 급성중독 피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두성산업측이 제기한 쟁점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법 4조1항1호) 위반 △과잉금지의 원칙(법 6조2항) 위반 △평등의 원칙 위반 등이다.

강 부장판사는 두성산업측의 주장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 부장판사는 결정문에서 ‘명확성의 원칙’에 대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 적용대상자와 구체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행위내용을 알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사용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불명확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기업은 각기 다른 유해·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어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일률적·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기업들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강 부장판사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과도하지 않다”고 밝혔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조항이 모든 산업재해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 안전·보건 의무를 고의로 위반해 산업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만을 처벌대상으로 하고 있어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계·시민사회와 대립 예상 = 이번 헌법소원심판 청구로 중처법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사용자 경제단체와 노동계·시민사회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이중 헌법소원심판 청구의 중심에 섰던 중소기업중앙회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중처법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어서다. 중기중앙회는 그동안 중처법을 전제로 한 ‘중처법 적용 2년간 유예’를 요구해 왔다는 점과도 배치된다.

특히 총선이후 국회 관계도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기중앙회가 1월 31일을 시작으로 진행한 ‘중처법 2년 유예 촉구’ 릴레이 결의대회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관계를 악화시켰다. 릴레이 결의대회가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을 지원하는 형국이 된 탓이다.

중소기업단체 내부에서도 “중처법 기조에는 동의하지만 중기중앙회 행보가 우려스럽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일부 단체는 결의대회에서 빠졌다.

현직 교수출신 중소기업 전문가는 “중처법 헌법소원심판 청구로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단체는 보건·안전을 거부하는 집단으로 비쳐져 총선 이후 활동에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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