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에 서민 허리 휘는데 ‘묻지마 총선공약’ 어쩌나

2024-04-08 13:00:16 게재

국제유가 90달러 돌파 … 고물가 당분간 불가피해

고금리까지 설상가상 … 허리띠 졸라매는 서민들

민생토론회발 최대 수백조 재정투입 대국민약속

재정펑크 속 ‘부가세 인하’ 등 감세 약속도 난감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 100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과일과 농산물 가격 급등에 시달려온 서민들은 기름값 폭등 날벼락까지 맞게 됐다. 여기에 고금리 장기화로 빚 있는 서민들은 물론, ‘영끌’해 ‘부동산 막차’를 탄 중산층까지 생활고를 호소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대외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최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총선 이후 기재부의 시간이 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더 큰 문제는 총선 이후다. 4·10 총선이 마무리되면 수많은 정책공약이 검증대에 오르게 된다.

이미 지난 1~3월 대통령 주재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최소 수십조원 규모의 지출 약속이 산적해 있다. 여야 정당들도 총선을 겨냥해 앞다퉈 한 감세와 재정지원 공약도 쌓여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대외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최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총선 이후 기재부의 시간이 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지난해 50조원대 재정펑크에 이어 올해도 세수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 아노미’ 상태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여야정당의 대국민 약속을 모두 백지화하기도 어렵다.

8일 기재부 핵심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제기된 의제를 모두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면서도 “그렇다고 정당과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백지화하는 것도 어려운만큼, 세법개정안이나 예산 편성과정에서 객관적으로 현실성 여부를 엄밀하게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오른 국제유가, 물가 비상 = ‘물가와의 전쟁’으로 1분기를 보낸 한국경제는 이제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 관리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금리인하 시기를 마냥 늦추고 있어 당분간 ‘글로벌 고금리’ 상황이 불가피하다. 이스라엘의 이라크 대사관 침공으로 중동발 정세는 극한 불안 속에 빠졌다.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대에 돌파하고 10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영향을 준다. 당분간 고금리-고물가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에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까지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연초부터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강달러 영향으로 1350원선까지 치솟았다. 1300원대 환율이 이어지면서 수입물가 상승을 통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 가중될 전망이다.

결국 정부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에 대한 정책대응과 함께 총선 전 내놓은 정치권의 재정투입·감세 약속의 실행 여부까지 선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하반기에도 물가불안요인 산재 = 문제는 하반기에도 불안요인이 더 많다는 점이다.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고물가상황과 총선을 의식해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기조’를 유지했다.

이런 방침에 따라 한국전력은 2분기(4~6월)까지 연료비조정단가를 현재와 같은 킬로와트시(kWh)당 5원으로 유지했다. 1분기에는 영세 소상공인 126만명에는 업체당 최대 20만원의 전기요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하반기에는 전기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한전만 보더라도 상반기 원가보다 싼 전기를 공급하면서 40조원대 누적적자가 발생했다.

유류세 인하 조치는 오는 4월 말로 종료될 예정이나 최근 국제유가 불안으로 2개월 추가연장에 무게가 실린다. 인하조치 연장은 곧 ‘세수감소’로 이어진다.

재정 집행도 상반기에 집중됐다.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집행률 65%를 달성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2월 말 기준 목표 388조6000억원 가운데 121조3000억원을 집행했다. 작년 동기 대비 19조8000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이 말은 곧 하반기에 쓸 ‘재정여력’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예고된 정치권 재정지출압박 =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나라살림에는 상당한 압력이 예상된다. 세금을 줄이고 재정 지출을 늘리는 선심성 흐름에서는 여야가 무차별적이라는 점에서다.

국민의힘이 전방위인 감세에 초점을 맞춘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재정지출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당의 공약은 ‘자산세 감세’에 비중을 두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자녀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감세 공약도 발표했다. 반도체 등 주요 주력산업과 차세대 기술에 대한 지원 방안도 공약에 담겼다.

여기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핵심 생필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하안까지 제시했다. 이것만 합해도 수십조원대 감세가 불가피한 약속들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근로자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데 타깃을 두고 있다. 근로소득의 세액공제 기본공제를 상향하고, 근로자 본인 및 자녀에 대한 통신비 세액공제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표는 ‘전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도 제안했다. 필요한 재원은 약 13조원이라는 게 민주당 측 설명이다.

◆민생토론회 국민약속은 어쩌나 = 24차례의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언급된 정책도 모두 국가재정투입이나 감세를 전제로 한 것이다. 적게 잡더라도 수백조원대 예산투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민생토론회는 중앙부처 신년 업무보고를 겸해 지난 1월4일부터 시작됐다. 당초 10여 차례 계획됐으나 다양한 현안을 다뤄오며 연장됐다. 특히 야당은 ‘관권선거’라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윤 대통령을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정부는 민생토론회를 통해 다세대·다가구, 소상공인 대책, 서민 취약계층을 위한 상생 금융, 단말기유통법 폐지와 대형마트 규제 개선방안 등이 제시했다. 청년 국가장학금 수혜대상 100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확대, 어르신들 주택 보급 확대 등 각 계층을 위한 정책도 나왔다.

이와 함께 GTX A·B·C 노선 연장과 D·E·F 신규 노선 신설 지방 대도시권에도 광역급행철도 도입, 철도 지하화 추진계획 등 굵직한 교통 대책도 발표됐다.

또 △그린벨트 획일적인 해제 기준 전면 개편 △전국 1억300만평의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원전 생태계 정상화 △재건축·재개발 규제 철폐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전면 폐지 △특례시 지원특별법 제정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디지털 환경에 맞춘 민원 서비스 혁신 △필수의료 보상체계 개편 △늘봄학교 지원 등도 제기했다.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정책들을 모두 이행하는 것은 재정 여건상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더구나 정부는 야당의 ‘총선 개입’ 논란에 맞서 “(총선 이후)앞으로도 계속 민생토론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이렇게 된다면 수백조원을 넘어서 수천조원대 ‘대국민재정투입·감세약속’이 누적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유호림 강남대 교수는 “지난해 국세수입은 전년 대비 56조4000억원이 감소했고, 향후 윤석열정부 기간 총 세수 감소 규모를 누적법으로 추정하면 105조8000억원에 이른다”면서 “여기에 총선용 공약까지 가세하면 재정파탄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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