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법상 공동행위 판단은 해수부 장관 배타적 권한”

2024-04-26 13:00:01 게재

서울고법 판결에 공정위 상고 … 4월 중 선사 의견 제출 예정

해운법 29조에서 공정거래법 적용 제외 구체적으로 제시

외항 정기선 운송서비스를 하는 해운기업들이 운임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등 공동행위를 할 때 정당성 여부를 누가 판단해야 할까.

공정거래위원회가 동남아항로와 한일항로를 정기운항하는 국내외 해운기업들에게 1762억원(동남아항로 962억원, 한일항로 8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 심사가 본격 진행될 예정이다.

26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국~동남아항로에서 정기선 운송서비스를 하는 대만 해운기업 에버그린은 이달 안에 공정위가 제기한 상고이유서에 대한 의견을 대법원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 판결(2월 1일)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공정위는 상고심 변론을 강화하기 위해 법무법인을 추가 선임해 3개 법무법인으로 심리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 해운기업들이 해운기업에 대한 공동행위를 인정한 해운법이 제대로 작동할지 주목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는 17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창립 70주년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사진 한국해운협회 제공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 운임공동행위 허용 = 공정위는 2022년 1월 한~동남아 수출·수입 항로에서 총 120차례 운임을 합의한 12개 국적 선사들과 11개 외국적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962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해운법 제29조는 일정한 절차·내용상 요건(해양수산부장관에 대한 신고, 화주 단체와의 협의) 아래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국내외 23개 선사들은 신고·협의 요건을 지키지 않았고,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는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해당 국적선사는 고려해운 남성해운 동영해운 동진상선 범주해운 에스엠상선 에이치엠엠(HMM) 장금상선 천경해운 팬오션 흥아라인 흥아해운 등으로 주요 국적선사들이 망라됐다.

외국적선사는 청리네비게이션씨오엘티디(CNC) 에버그린 완하이 양밍 씨랜드머스크 퍼시픽인터내셔널라인스리미티드 (PIL) 뉴골든씨쉬핑피티이엘티디(COSCO) 골드스타라인엘티디(GSL) 오리엔트오버씨즈컨테이너라인리미티드(OOCL) 에스아이티씨컨테이너라인스컴퍼니리미티드(SITC) 티에스라인스엘티디(TSL) 등이다.

선사들과 해운업계는 반발했다. 운임을 합의한 공동행위는 해운법 제29조 제1항에 따른 정당한 행위이고, 설령 공동행위에 경쟁법적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를 규제할 권한은 공정위가 아니라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있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장관에게 신고하고 화주단체와 협의 의무도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에버그린을 필두로 공정위 처분에 대한 19건의 행정소송이 제기됐고, 서울고등법원은 3개 재판부에 사건을 할당했다. 제3행정부는 완화이 등이 제기한 6건, 제6행정부는 남성해운 등이 제기한 7건, 제7행정부는 에버그린 고려해운 등이 제기한 6건이 배당됐다.

재판도 처음 행정소송을 제기한 에버그린 사건이 빨리 진행됐다. 서울고법 제7행정부는 2022년 11월 1차 변론 이후 2023년 11월까지 5회 심리를 끝으로 변론을 종결하고 지난 2월 “공정위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공정거래법은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기본법으로서 모든 사업자에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모든 경제활동을 오로지 시장의 자율기능이나 경쟁원리에만 맡길 수 없고, 공정거래법도 적용제외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해운법상 공동행위는 제29조를 통해 외항 ‘정기’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허용해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부당한 공동행위가 있을 때도 해수부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되, 공정위에 통보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외항정기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공동행위에 대해 해수부장관이 배타적 규제권한을 가지고, 공정위는 이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제7행정부, 에버그린 판결을 대표사건으로 지정 = 해운업계는 제7행정부 판결이 에버그린을 포함 19건 전체 소송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추정하고 대법원 심리를 주목하고 있다.

제7행정부는 판결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에버그린 사건을 해당 재판부에 배정된 6개 사건에 대한 대표사건으로 지정했다. 에버그린 사건 판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제7행정부가 다른 5건에 대한 판결을 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제6행정부도 같은 이유로 에버그린 사건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6행정부는 지난달 27일 배정받은 7개 사건에 대한 변론을 에버그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추후 지정하기로 했다.

제3행정부도 배정받은 6개 사건에 대해 예정됐던 3월 4월 5월 변론기일을 모두 6월 13일로 통일한 상태다.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부회장은 제7행정부 판결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적으로 해운법에서 규정된 대로 공동행위를 하면 된다는 게 (법원 판결의) 핵심”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는 “절차가 일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면 그 부분을 보완하면 된다”며 “예컨대 화주와 협의하는 부분은 구체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정보 제공을 어디까지 할 건지 선사와 화주가 협의해서 (규정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해운법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적용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운법상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법안이 2021년 국회에 재출된 상태다. 해수부에 따르면 법 개정도 이번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정연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