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위장환경주의 논란부터 해결해야
양질 탄소크레딧이 제값 받도록무결성 확보, 민간 주도 성장 필수
“자발적 탄소시장은 민간 차원에서 운영하는 시장입니다. 탄소크레딧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위장환경주의(친환경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문제를 잘 통제하는 게 중요해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가 최소한의 지침만 정해주고 나머지는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시장을 만드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16일 김태선 나무이엔알(NAMU EnR)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이엔알은 탄소배출권 분석 전문 회사다. 자발적 탄소시장(VCM)은 △개인 △기업 △정부 △비영리 단체 등 다양한 조직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탄소크레딧을 창출하고 거래할 수 있는 민간 탄소시장이다. 규제 기관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지 않는 시장 중심의 자율적인 구조로 온실가스 감축의무에 따라 거래가 이루어지는 규제적 탄소시장(CCM)과 구분된다. 탄소크레딧은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통한 감축분을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공인 기관의 검증을 거쳐 발급받은 인증서다.

◆”규제적 탄소시장과 통합 운영은 안 해” = 10일 발표된 ‘2025년 환경부 주요 정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미대상 기업들도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방안이 추진된다. 관계 부처와 산업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 탄소크레딧 시장 전담반을 구축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다.
2024년 12월 기획재정부와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국제 자발적 탄소 메커니즘(GVCM·Global Voluntary Carbon Mechanism)‘을 공동 개발하는 내용의 협력의향서(SOI·Statement of Intent)를 체결한 바 있다. 국제 탄소시장 세부 운영규칙인 ‘파리협정 제6조’에 부합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탄소시장 모델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자발적 탄소시장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사회·투명경영(ESG)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참여가 확대되고 투명성 제고와 표준화를 위한 국제사회 노력이 강화하면서 자발적 탄소시장이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또한 자발적 탄소시장 신뢰도 제고를 위한 태스크포스(Taskforce on Scaling Voluntary Carbon Markets·TSVCM) 조사에 따르면, 탄소크레딧에 대한 국제 연간 수요가 2020년 0.1 GtCO₂에서 2030년에는 1.5~2 GtCO₂로 15배 이상 증가하며 2050년에는 7~13GtCO₂에 이를 전망이다.
2021년 맥킨지 보고서 역시 자발적 탄소시장이 2030년까지 2020년(1억톤 수요) 대비 15배(15억톤 수요)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또한 2030년 시장 규모가 500억달러에 달하고 2050년까지 100배 규모로 늘어난다고 내다봤다. 이는 10년 안에 자발적 탄소시장이 규제적 탄소시장과 비슷한 규모가 될 거라는 의미다.
16일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 자발적 탄소시장이 활성화가 잘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 측면에서의 정확성이나 영구성, 검증 측면에서의 개방성과 투명성 등 무결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수요가 창출되지 않는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통합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발적 탄소시장 수요 창출을 위해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포함시켜 거래가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아직 정확한 일정을 잡지는 못했지만 연내 필요한 지침 등은 제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규제적 탄소시장의 일종이다.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발행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할당 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을 문다. 하지만 공짜로 배출권을 나눠주는 비중이 커서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인증 체계 시급 = 문제는 자발적 탄소시장이 위장환경주의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 탄소 감축 활동을 평가하는 인증시스템의 신뢰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투자를 해서 대기중 온실가스를 줄인 양질의 배출권이 더 비싸게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김 대표는 “똑같이 온실가스 5톤을 줄였다고 해도 그 질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지면 위장환경주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며 “채권처럼 탄소크레딧 등급을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정확히 평가해서 기업들이 고품질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규제적 탄소시장과도 맞물린 문제다. 탄소배출권이 제 가격을 주고 거래되는 시장 구조가 정착돼야 기업들도 탄소 감축 투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감축 효과 측면에서의 정확성과 영구성, 검증 측면에서의 개방성과 투명성 등 무결성이 검증된 고품질의 배출권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게 일반화해야 한다는 소리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 설명
파리협정 제6조 = 2024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국제탄소시장 세부 지침(파리협정 제6.2조와 제6.4조 등)이 최종 합의됐다. 방법론의 정의에 따라 탄소크레딧 품질이 달라지고 자발적 탄소시장과 같은 다른 탄소시장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부 지침 합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간단히 설명하면 제6.2조는 국가 간 자율 직접거래, 제6.4조는 유엔 감독 하에 이뤄지는 중앙집중식 시장 체제다. 파리협정 제6.4조는 교토의정서 체제에서의 청정개발체제(CDM)를 대체하는 성격으로 여겨지는 지속가능발전체제(SDM) 방법론 채택과 관련이 있다. 청정개발체제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해 시행한 사업에서 발생한 탄소감축량을 선진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청정개발체제를 통해 감축실적을 인정받으면 외부사업인증실적(KOC)로 전환하여 국내에 판매할 수 있다. 청정개발체제는 교토의정서 체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2020년 사실상 끝났지만 지속가능발전체제 세부이행지침 협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종전 방식을 이어왔다. 지속가능발전체제 핵심은 해외 친환경사업으로 발생한 감축분 크레딧(CERs)을 오로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서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