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윤 기 공생복지재단 명예회장
“고아 없는 세상을 한국과 일본이 함께 만들어 가자”
아이들이 보호·존중받는 평화로운 세상 희망 …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국제운동에 앞장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윤 기 공생복지재단 명예회장(84세)이 15여년 추진해 온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운동의 출발점은 바로 이 믿음이다. 윤 회장은 세계 고아의 날을 단순한 국제기념일 제정 운동이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운동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인권운동 △생명에 생기를 넣어주는 생명운동으로 규정한다.
윤 회장의 삶 자체가 이 운동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윤 회장의 부모는 한국인 윤치호 전도사와 일본인 윤학자(다우치 치즈코) 여사다. 두 사람은 1928년 목포에서 시작된 공생원을 통해 수많은 고아들을 돌보며 한국 아동복지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윤학자 여사는 평생 3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품어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불린다.
올해로 공생원의 역사는 97년을 넘어섰다. 2일 내일신문 회의실에 만난 윤 회장은 그 역사 속에 나타난 한일 양국 시민들의 인권 연대의 뜻을 바탕으로 이제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제안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머니는 한국과 일본을 잇는 사랑의 다리였다” = 윤 회장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어머니 윤학자 여사는 어떤 분이었느냐”는 것이다.
윤학자 여사는 일본 고치현 출신이다. 1936년 공생원 봉사활동을 하다가 윤치호 전도사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자신의 삶 전체를 한국의 고아들을 위해 바쳤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자녀와 원생을 구별하지 않았다. 윤 회장은 훗날 회고록에서 “어머니는 나를 특별히 챙긴 적이 거의 없었다. 공생원의 모든 아이가 어머니의 자식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전쟁은 공생원에도 큰 시련을 안겼다. 전쟁고아가 몰려들면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생활하게 됐고 남편 윤치호는 1951년 식량을 구하러 광주로 갔다가 행방불명됐다. 홀로 남겨진 윤 여사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먹을 것을 구해 아이들을 먹였다.
윤 회장은 “어머니께서 한번은 아이들이 100명 미만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며 “어머니는 그저 아이들이 굶지 않기를 바랐고 손수 만들어 주고 싶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윤 여사를 윤 회장은 존경하고 감사해 했다.
◆목포시민 3만명이 함께 한 일본인 여성의 마지막 길 = 윤학자의 삶이 얼마나 큰 울림을 남겼는지는 그의 마지막 길에서 확인됐다.
1968년 10월 윤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목포 시민들은 일본인 여성에게 전례 없는 시민장을 치러 주었다. 장례식에는 3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여했다. 일제강점기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던 시절이었지만 목포 시민들은 윤 여사를 일본인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머니로 기억했다.
장례식장에서 공생원생 대표는 조사에서 “어머니, 언어와 풍속이 다른 이 땅에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배가 고파 울부짖는 고아들을 모아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셨고 손수 밥을 얻어 먹여 주셨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윤 회장은 “그날 목포는 울었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며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넘어 인간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역사적 장면이었다”고 회상했다.
실제 윤 여사는 1963년 일본 국적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이는 한국 사회가 윤 여사의 헌신을 국가 차원에서 인정했다는 의미다.
◆공생원 97년이 보여준 ‘한일 공생’ = 윤 여사와 공생원의 역사는 단순한 복지기관의 역사가 아니다.
오 준 전 유엔대사(한국아동단체협의회 회장)는 ‘윤학자 공생재단-아동 보호와 한일 공생의 95년’ 보고서(2024.5)에서 공생원을 한국과 일본이 갈등과 대립을 넘어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의 가치를 실천한 대표 사례로 평가했다.
실제로 공생원은 해방 이후에도 일본 사회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윤학자 후원회가 결성됐고 수많은 일본 시민들이 공생원을 후원했다. 윤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일본의 지원은 이어졌다.
특히 일본에서 재일동포 노인들의 삶을 돕기 위한 양로원 설립 운동이 추진됐다. 윤 회장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말로 우메보시(일본 매실장아찌)가 먹고 싶다고 했다”며 “고향을 못가는 재일동포들은 김치 된장찌개 생각이 나지 않겠냐”며 양로원 설립을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소노 아야꼬(曽野綾子), 히구치케이코(樋口恵子), 배우 스가와라 분타(菅原文太), 유도 금메달선수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씨와 복지지도자들이 참여했다. 1989년 오사카에 ‘고향의 집’이 처음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윤 회장에게 기적의 집을 열었다고 말했다. 고향의 집은 고베 교토 도쿄에서 만들어져 일본인과 재일동포를 위한 우호의 시설이 됐다.
윤 회장은 “한일 양국에는 갈등도 있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늘 따뜻한 연대가 존재했다”며 “공생원 역사는 그런 민간 차원의 공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 윤학자가 한국 고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고 반대로 일본 시민들이 재일동포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힘을 모았다”며 “이러한 경험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인권을 실천하는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세계 고아의 날은 왜 필요한가 = 현재 유엔과 유니세프 기준으로 전 세계 고아는 약 1억50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윤 회장은 단순히 부모를 잃은 아이들만을 고아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쟁과 난민 문제, 기후위기, 팬데믹, 빈곤, 가정폭력, 가족해체 등으로 인해 부모가 살아 있어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 중동전쟁 등은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수많은 아이들을 보호 사각지대로 내몰았다.
그는 “고아 문제는 더 이상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 지속가능발전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윤 회장은 세계 고아의 날을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가 어린이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이를 ‘인권운동’이라고 말한다. 모든 아이는 국적과 인종, 종교, 경제적 환경과 무관하게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추진해야 하는 이유 = 윤 회장은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을 한국과 일본이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두 나라 모두 전쟁고아의 아픔을 경험한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전쟁 당시 약 10만 여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다. 일본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전쟁고아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했다. 그런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 도움을 주는 선진국이 됐다.
윤 회장은 “지금 세계가 평화로부터 멀어지고 국제질서가 와해 위기에 처한 지금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전략적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며 “그것은 민주주의도 공간주의도 패권주의도 아닌 공생원을 설립한 윤치호의 공생주의”라고 강조했다. 이 시대에 가장 희생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한국과 일본이 지도력을 발휘할 때라는 것이다. 윤 회장은 “갈등하던 양국이 서로 손잡고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위해 세계가 힘을 합치자고 나서면 모두가 박수를 칠 것이다. 누가 반대하겠나”라고 말했다.
◆고아 없는 세상은 모든 아이가 존엄한 세상 = 윤 회장이 말하는 ‘고아 없는 세상’은 부모가 모두 살아 있는 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이유로든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가 사회로부터 버려지지 않는 세상이다. 국가와 지역사회가 책임을 다하고 국제사회가 함께 협력하며 모든 아이가 교육받고 보호받으며 존엄하게 성장하는 사회가 바로 그가 꿈꾸는 미래다.
윤 회장은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했다. 고아이지만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영웅이 될 수 있다. 제가 아이들을 공주 왕자라고 부르자고 한다. 아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며 “공생이라는 말은 같이 살자는 뜻 아니냐.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한편 2012년 발족한 ‘유엔 세계고아의 날 제정추진위원회’는 △2014년 한일공동선언문, 제정추진을 위한 100인위원회 발족 △2016년 고치현 전라남도 자매결연협정 체결 △2017년 국제학술대회 △2018년 제정 청원 뉴욕대회 △2020년 추진위 이순재 총재 취임식 △2021년 제정 청원서 유엔 제출 및 가결, 국제 포럼 △2022년 제정 추진 한일·일한 대회 △2025년 한일·일한 의원연맹 합동총회 공동선언 등 활동을 해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