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시장 양극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
AI 초과이윤 사회 환원·노동영향평가 도입 … 원청교섭과 플랫폼 노동 보호로 격차 해소
이재명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가 본격화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정년 연장, 플랫폼 노동자 보호, 산업전환 대응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노동현장에서는 체감 변화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재해가 반복되고 원·하청 격차와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도 여전하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책의 성패는 결국 집행과 제도화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이전 정부보다 진전됐지만 핵심 과제는 아직 현장에서 체감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 위원장은 지방선거 이후부터 총선 전까지를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으로 규정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플랫폼 노동자 보호,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추진할 사실상 마지막 시기라는 판단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과 산업구조 변화를 핵심 화두로 제시했다. AI를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노동시장과 분배구조를 바꾸는 변화로 바라봐야 하며 이에 대응할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원·하청 구조 개선과 플랫폼 노동자 보호, 노동법 사각지대 해소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노동조합도 임금과 단체협약 중심의 역할을 넘어 산업전환 과정의 노동자 보호와 사회적 분배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초과이윤의 사회 환원과 분배 문제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양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5월 2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진행했으며 6·3 지방선거 이후 서면 질의를 통해 보강했다.
●이재명정부 출범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1년간 보여준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정책 방향성과 문제의식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산업안전과 노동권에 대한 관심은 과거 정부보다 높다. 다만 정책은 의지와 발언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집행과 제도화가 뒤따라야 한다. 현장에서는 중대재해와 산업재해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기업들이 특별히 긴장하거나 경영 기조를 바꾸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노동부 역시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정년연장과 노동시간 단축 같은 핵심 과제도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선거 일정과 경제 상황 등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속도는 부족했다. 지방선거 이후 총선 전까지 약 1년 반이 개혁정책을 추진할 사실상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번 선거에서는 거대 양당의 승패에 대한 평가가 많았지만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 산재, 청년 일자리 등 노동 현안은 중심 의제가 되지 못했다. 정치인의 승패보다 정치 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기다. 새롭게 구성될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노동과 민생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대재해와 해고사업장 문제 등 노동 현안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보여야 한다.
●민주노총과 이재명정부의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총은 특정 후보 지지보다 내란 세력에 대한 심판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더 중요하게 판단했다. 현재는 과거 정부보다 소통 창구가 확대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신뢰다.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사회적 대화가 곧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은 이미 여러 정부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참여 여부가 아니라 정부가 노동계 의견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느냐다. 현안 해결과 노정교섭이 쌓여야 더 큰 사회적 합의도 가능하다.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 해결의 핵심은 무엇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플랫폼 노동에 대한 법적 정의를 만드는 일이다. 어떤 노동이 플랫폼 노동인지 명확하지 않고 종사자 규모도 기관마다 다르게 집계한다.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에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 확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최근 노동부가 도급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하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논의도 한단계 진전될 수 있다.
●원청교섭과 초기업교섭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핵심에는 원·하청 구조가 있다. 같은 산업 안에서도 원청과 하청의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가 매우 크다. 민주노총은 올해를 원청교섭 원년으로 선언했지만 사용자들의 회피와 지연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청의 책임을 묻는 투쟁도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와 부품업체가 함께 교섭해야 원·하청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백화점 등 다른 업종에서도 업종단위 교섭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초기업교섭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는 왜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보나.
노동시장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임금격차가 아니라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른 구조적 격차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장기간 누적돼 왔다.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 확대, 하청구조 심화는 기존 노동법의 보호 사각지대를 넓히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노동법 보호 범위 확대와 사회안전망 강화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으면 저출생 문제나 지역소멸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노동정책 과제는 무엇인가.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정년연장 논란도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기업들은 정년퇴직자가 발생해도 신규 채용보다 외주화와 하청 확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이 체감하는 문제 역시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다. 앞으로 제조업과 사무직 일자리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의 영향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반면 돌봄과 보건의료, 공공서비스 분야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본다. 문제는 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돌봄·보건의료 분야는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청년 유입도 가능하다고 본다.
●AI 시대 노동시간 단축은 어떻게 해야 하나.
노동시간 단축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다. AI 시대 핵심 고용정책이다. AI와 자동화로 높아진 생산성은 기업 이윤뿐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에도 활용돼야 한다. 과거 자동차 산업의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도 기술 변화와 노동시간 단축을 결합한 사례였다. 주4.5일제와 주4일제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AI 도입, 고용유지,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확대를 하나의 틀에서 논의해야 한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AI와 탄소중립 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담이 특정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석탄발전소 폐쇄나 제조업 자동화는 해당 산업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 상권과 협력업체에도 영향을 준다. 산업전환 정책은 새로운 일자리와 직업훈련, 지역경제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전환의 혜택은 공유하면서 부담은 특정 집단에 떠넘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과 초과이윤 배분 문제를 어떻게 보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례는 AI 시대 분배 문제를 보여준다. AI는 승자독식 구조를 강화하며 소수 기업에 막대한 이윤을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가 얼마를 가져가느냐보다 기업 이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 초과이윤 배분 문제는 개별 기업의 경영 판단을 넘어 투자와 분배, 사회 환원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국가 지원을 받은 기업의 사회 환원 방식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법인세 체계 등 사회적 분배 장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민주노총도 사회연대기금 확대와 하청노동자 이익 공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노동영향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영향평가처럼 노동영향평가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AI와 자동화, 산업전환이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분석해야 한다. 일자리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지역이 영향을 받는지, 새로운 일자리는 얼마나 생기는지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동화율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 AI 확산 속도도 매우 빠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노동시장 영향에 대한 사전 검토 체계는 사실상 없다. 석탄발전소 폐쇄처럼 산업전환은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영향평가는 단순한 고용통계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살펴보는 제도가 돼야 한다.
●산업재해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가장 요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정부가 산업안전에 관심을 갖고 여러 제도를 추진하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관심과 의지만으로는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1호 적용 사업장인 삼표그룹 회장이 무죄를 선고받았고 아리셀 참사 책임자 형량도 크게 줄었다. 건설업과 조선업 등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지만 원청 경영진 책임은 여전히 미흡하다. 결국 실효성 있는 처벌과 감독이 뒤따르지 않으면 산재는 줄어들기 어렵다.
특히 산재는 원청보다 하청·외주업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위험 업무를 외주화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사고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노동자 참여 제도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가 감시단 등 참여 제도를 도입했지만 현장에서는 참여할 시간과 여건이 부족하다. 작업중지권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산재는 선언보다 실효성이 중요하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점은 긍정 평가하지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앞으로 노동운동의 가장 큰 과제는.
인공지능과 산업구조 변화가 노동시장 전반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노조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지금처럼 개별 사업장의 임금인상 요구만으로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기 어렵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원·하청 격차 해소, 노동시간 단축, 산업전환 과정에서의 노동자 보호가 핵심 과제다. 노조는 사회 전체의 분배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초과이윤 배분과 사회환원, 하청노동자 연대도 과제다. AI 시대 노조도 새로운 연대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한남진·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