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붐, 아시아에 ‘슈퍼 흑자’ 안겼다
미국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 … 한국·대만 수출 늘고 돈은 다시 미국 공장으로
다만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상당 부분은 과거처럼 미국 국채 매입에 머물지 않고, 미국 공장과 생산시설에 직접 투자되는 흐름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 뉴이코노미 뉴스레터의 크리스 앤스티 편집인은 13일(현지시간) 중동 전쟁이 에너지 수입국인 아시아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지만, 미국 주도의 AI 투자 확대가 이를 상쇄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아마존, 알파벳 등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의 AI 관련 지출이 올해 8050억달러, 내년 1조1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만 해도 2025년보다 79% 많다.
효과는 수출에서 먼저 나타났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과 대만의 상황을 ‘AI 슈퍼 흑자’라고 불렀다. 미국 기업이 AI 서버, 반도체, 데이터센터 장비를 대거 사들이면서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대만의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는 이미 숫자로 반영됐다. 한국은 반도체와 정보기술 제품 수출에 힘입어 최근 1980년대 이후 가장 큰 수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2.6%로 올렸는데, 핵심 배경은 반도체 경기 호조였다. 반도체 산업 의존도가 더 높은 대만은 50년 만의 최대 수출 증가에 힘입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9.6%까지 높였다.
골드만삭스의 권구훈 이코노미스트 등이 지난달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AI 투자 확대는 올해 한국의 AI 관련 수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10%를 넘어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를 수 있고, 대만은 20%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의 올해 흑자 전망치를 4월 10.1%에서 15%로 높였다. 금액으로는 2890억달러다.
문제는 이렇게 들어온 돈이 어디로 가느냐다. 일부는 국내 경제로 흘러간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반도체 직원들에게 1인당 34만달러 상당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흑자가 너무 빠르게 쌓이면서 국내에서 모두 소화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루이즈 루 아시아경제 책임자는 “수출 호조가 국내 경제가 흡수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기업 현금흐름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아시아의 대규모 흑자는 주로 미국 국채 매입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아시아 저축 과잉’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의 흐름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상당 부분이 직접투자(FDI) 형태로 미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해왔고, 일본과 한국은 합쳐 90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투자은행 노무라홀딩스의 소날 바르마 이코노미스트 등은 이를 두고 “자본 흐름의 방향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가 관세를 피하고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 첨단 제조시설 건설을 돕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목은 최근 원화 약세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수출로 달러를 벌어도 그 돈이 국내에 오래 머물지 않고 미국 공장 투자로 다시 빠져나간다면, 경상수지 흑자가 곧바로 원화 강세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