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편성 전격착수…나라빚 최소화·적정 사용처가 열쇠
이재명 대통령, ‘한달 내 편성’ 속도전 주문 … 중동발 유가충격에 민생구제 카드
15조~20조원 규모 전망 … 지역화폐·유가 보조금 등 취약계층 ‘타깃 지원’ 집중
초과세수 활용한 국채 최소화가 관건 … 여야 ‘포퓰리즘 vs 민생 안정’ 공방 가열
13일 정부가 2026년 첫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절차에 전격 착수했다. 중동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폭등과 고물가로 민생경제가 ‘비상상황’에 직면했다는 판단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 달 내 완료”라는 초강수 속도전을 주문했다. 4월 중 추경안의 국회 제출과 집행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르면 3월말에라도 추경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살림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민생 현장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를 놓고 정치권과 시장의 시선은 엇갈린다. 이번 추경의 성패는 결국 ‘나랏빚’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와 ‘어디에 효과적으로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4월추경, 법적요건 해당될까 = 추경은 ‘정치적 선택’이기 전에 ‘법적 요건’이 있다. 국가재정법 제89조는 ①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②경기침체·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 ③법령상 국가 지급 의무 지출이 늘어날 때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국회 확정 전에는 미리 집행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이번에 추경을 편성한다면 ②호 요건과 관련성이 높다.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중동 전쟁 충격이 원유·가스·나프타 수입 부담을 키우고, 유가가 물류비·배달비로 전이돼 취약계층 타격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경기침체·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 조항을 적용하기 충분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12일 구윤철 부총리 주재로 열린 민관합동 비상경제 대응회의에서 KDI 등 국책 연구기관들은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고물가·고금리로 내수회복 불씨가 꺼질 우려가 크다”고 진단했다. 특히 중동발 충격이 에너지 비용 상승과 소비심리 악화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선 추경이라는 ‘재정의 심폐소생술’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다만 법은 추경의 ‘목적’까지 자동 승인해주지 않는다. ‘위기 대응’이라는 큰 틀에서, 어떤 항목이 위기와 직접 연결되는지 소명이 필요하다. 사용처가 명확하지 않하면 국회 심사에서 “퍼주기” 공방만 남을 수 있다.
◆추경, 어디에 쓰일까 = 이번 추경의 핵심 키워드는 ‘타깃형 직접 지원’이다. 이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계층 타깃을 명확히 한 차등적 지원”을 강조했다. 이른바 ‘퍼주기’ 비판을 피하면서 가장 타격이 큰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 재원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구체적인 항목으로는 △소상공인 지역상권 매출확대를 위한 지역화폐 발행지원 △에너지 바우처 및 전기·가스요금 할인 확대 △화물차·대중교통·농어업인을 위한 유가 보조금 추가 지원 등이 거론된다.
문제는 ‘직접지원’이 곧바로 ‘물가 안정’으로 이어지느냐다. 재정지원이 소비를 살리면 내수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공급제약이 큰 품목에서 수요만 자극하면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는 추경과 별개로 가격충격을 누르는 정책 패키지를 동시에 가동할 방침이다.
그 패키지의 전면에는 유가 대책이 있다. 정부는 13일부터 2주간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공급가 상한은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이다. 유가가 더 오르면 매점매석 금지 고시도 병행한다. 추경이 ‘현금성 처방’이라면 최고가격제는 ‘유가 이상급등 차단막’이다.
다음 카드는 비축유 방출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11일(현지시간) 4억배럴 공동 방출을 합의했고, 한국은 2246만 배럴 방출에 동참하기로 했다. 방출 시기와 방식은 자율이지만, ‘공급 불안’ 신호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노린다. 추경이 집행되기 전에 시장심리를 먼저 다루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추경 재원조달은 어디서 = 시장과 정치권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재원 조달 방식이다. 15조~20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조달하기 위해 적자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시중 금리를 끌어올리고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다행히 정부는 ‘나라 곳간’ 형편이 나쁘지 않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 1월 국세수입은 전년 대비 6조2000억원 증가한 5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 호황과 주식시장 활성화에 힘입어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등에서 추가 ‘초과세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기획예산처의 3월 재정동향에 따르면 1월 관리재정수지는 11조3000억원 흑자로 출발했다. 정부는 이 같은 세수 여유분과 세계잉여금, 기금 여유자금 등을 최대한 끌어모아 국채 발행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연구기관장들은 전날 민관합동 비상경제 대응회의에서 “초과세수 범위 내에서 추경을 마련할 경우 금리·환율·물가 등에 미치는 부작용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돈을 풀되 시장을 흔들지 않는’ 조건을 ‘초과세수 규모 수준’으로 제시한 셈이다.
다만 현재 정부가 동시에 검토하는 카드들이 ‘세수감소’ 요인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대표 사례가 유류세 인하다. 재정경제부는 유류세 인하율을 1%p 높일 때마다 휘발유 가격은 L당 8.2원, 경유는 5.8원 내려간다고 밝혔다. 인하율을 10%로 적용하면 휘발유 세액은 L당 82원 낮아진다. 체감은 빠르다. 대신 세수는 줄어든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류세 10%를 인하하면 연간 세수가 1조2000억~1조8000억원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구윤철 부총리도 국회에서 “(유류세 인하 법정최대인) 37%를 적용하면 한 달에 6000억원대의 세수가 감소한다”고 말한 바 있다. 추경을 초과세수로 짜려는 구상과, 유류세 인하로 ‘세수를 깎는’ 카드가 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유가 안정은 최고가격제·비축유·유류세·취약계층 지원이 한 세트로 움직인다. 최고가격제는 정유사 손실보전 문제를 낳고, 비축유 방출은 시기 선택이 어렵다. 유류세 인하까지 얹으면 재정의 ‘구멍’이 커질 수 있다. 국채 없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결국 “얼마나 타깃팅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남은 변수는 = 정부의 속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 기획예산처가 안을 마련해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한 달’로 단축하라는 것이 대통령 지시다.
첫 번째 과제는 ‘물가 통제’다. 재정 투입이 자칫 시중 유동성을 늘려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확대와 비축유 2246만 배럴 방출이라는 공급측 대책을 병행하는 이유다. 두 번째 과제는 ‘정치적 합의’다. 6·3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시점이어서 ‘선거용 추경’이라는 야당의 공세를 돌파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 유지도 변수다. 1월 재정수지가 11조3000억원 흑자로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추경 편성으로 인해 연말 기준 관리재정수지가 다시 악화되면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구윤철 부총리는 “민생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빚을 내서 생색내는 추경이 아니라, 남는 돈을 알뜰히 모아 꼭 필요한 곳에 수혈하는 ‘정교한 재정 운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4월 추경의 향방이 2026년 대한민국 경제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