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충격이 세계경제 압박…경기침체 공포

2026-04-08 13:00:35 게재

인도 공장·영국 농가 타격

미국 가계 소비 둔화 우려

미국과 이란 전쟁이 6주째 이어지며 국제 유가 급등이 세계 실물경제를 빠르게 압박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선적 제한으로 세계 원유 공급의 거의 5분의 1이 영향을 받으면서, 금융시장을 넘어 기업 생산과 소비 전반에 충격이 번지는 양상이다.

로이터는 7일(현지시각) 전문가들 분석을 인용해, 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세계 경제가 둔화를 넘어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플라스틱 포장재 업체 에메랄드 패키징은 원재료인 플라스틱 수지 가격이 불과 몇 주 만에 파운드당 45센트에서 85센트로 치솟자 기존 계약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회사 대표 케빈 켈리는 가격 인상분을 고객에게 전가하지 못하면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아예 불가항력 조항을 선언하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인도 구자라트에서는 가스 부족으로 알루미늄 압출 공장 다수가 전쟁 시작 4~5일 만에 멈춰섰고, 영국 농민들은 비료값 급등과 공급 부족 속에 남은 재고를 아껴 쓰고 있다. 유가 충격이 원자재와 운송, 제조업, 농업으로 번지며 산업 현장 전반을 흔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시장 불안도 커지고 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09달러 안팎까지 올라 전쟁 직전보다 50% 넘게 상승했다. 로이터 조사에 참여한 분석가 13명은 공급 차질이 이어질 경우 올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서 190달러 사이를 오갈 수 있다고 봤다. 미국 은행 씨티의 이코노미스트 네이선 시츠는 유가가 110달러, 120달러를 넘어설 경우 경기침체 위험이 한층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전쟁이 빨리 끝나더라도 세계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물가 전망은 높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걸프 지역 정유시설과 항만, 저장시설이 크게 파손돼 전투가 끝나더라도 공급 정상화에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전쟁이 단기간에 멈추더라도 높은 에너지 가격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충격은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날 전망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영국은 OECD로부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2%에서 0.7%로 낮춰 잡혔다. 반면 중국은 걸프산 원유 의존도가 낮고 전기화 수준이 높아 상대적으로 버틸 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순에너지 수출국인 미국도 공급 제약에서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휘발유 가격급등과 주가 하락이 겹치면서 가계 소비를 더욱 짓누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 카드 사용액은 아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일수록 연료비 부담이 커지고 있고 외식·여행·숙박 소비가 앞으로 둔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금 환급 확대에도 올해 미국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 안팎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번 유가 충격은 단순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넘어 공급망 차질과 소비 둔화, 기업 수익성 악화가 한꺼번에 맞물리는 복합 충격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와 유럽은 미국보다 걸프 지역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충격에 더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역시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소비 둔화가 본격화하면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시장이 감당해야 할 수요 파괴의 폭이 커지고, 결국 세계 경제의 하방 압력도 더 거세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이주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