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의 동남아 산책
인도네시아 팜유를 둘러싼 경제안보의 딜레마
세계 최대의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지난 7월 9일, 경유를 사용하는 자동차, 트럭, 기차, 산업용 모터, 농광업용 장비 등 국가 산업 전반의 기계들에 팜유를 50% 이상 혼합하여 사용할 것을 의무화한 정책을 전격적으로 시행하였다. ‘B50’으로 명명된 이 대체에너지 정책은 지난 2008년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초로 바이오디젤 의무화를 도입한 이래 혼합 비율과 적용 범위를 일곱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확대해 온 자원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에너지 자립 향한 ‘B50’ 승부수
바이오 연료의 혼합 비율을 높여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인도네시아의 혼합 비율과 추진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은 현재 5%에서 10% 수준의 혼합률에 머물러 있고, 우리나라는 현재 4% 수준에 불과하며 오는 2030년 국가 목표치 역시 8% 선에 그친다. 인도네시아의 B50 정책 단행이 특별한 까닭은, 디젤 엔진 공학적으로 기술적 마지노선이라 여겨지던 혼합 비율 50%의 장벽에 세계 최초로 도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안보와 환경보호의 복합적인 딜레마 속에서 안팎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토록 급진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을 서둘러 추진한 직접적인 배경은 경상수지 악화와 외환보유고 고갈 압박이다. 올해 상반기 인도네시아 경제는 글로벌 통상 갈등과 세계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석탄과 천연가스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상반기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5% 급감하였고 경상수지 적자 폭 역시 함께 확대되었다. 여기에 더해 섬유, 의류, 신발 등 노동집약적인 핵심 제조업 부문의 대외 수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상반기에만 제조업과 가공 산업 부문에서 무려 4만3000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내수 시장이 얼어붙는 상황에서 루피아화 가치 폭락을 방어하고 수입 결제 대금을 치르느라 외환보유고마저 급격히 감소하자 정부의 조급함은 극에 달했다. 결국 정부는 매년 막대한 달러가 지출되는 해외 원유 수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거시경제의 안정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정책적 손익을 엄밀히 산정하여 국산 팜유 고도화라는 강수를 두게 되었다. B50 정책이 안착할 경우 연간 약 93억 5000만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절약할 수 있어 자국 자원을 대외 충격을 막을 방파제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국가적인 에너지 안보를 위해 선택한 이 정책은 역설적으로 민생 경제를 흔들며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B50 바이오디젤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면 매년 엄청난 양의 조팜유(CPO)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급 총량이 제한된 상황에서 연료용 선배정 물량이 이전보다 25% 이상 늘어나자, 내수 식용유 시장에는 즉각적인 원료 부족 압박이 가해졌다.
실제로 서민들이 의존하는 정부 보조금 식용유 ‘민냑키타’의 전통 시장 유통 가격은 최근 몇 달 사이 정부 최고소매가격인 리터당 1만4000루피아를 크게 상회하여 1만6000~1만7000 루피아선까지 폭등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실질 인상률이 최대 21%에 달하는 셈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식용유 등 생필품 가격 폭등은 언제나 정치적 소요 사태로 비화하는 뇌관 역할을 해왔다. 무역부가 서둘러 대기업의 팜유 수출을 규제하고 내수 공급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를 공포했으나 대가도 컸다. 수출길이 막히며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약 27억달러에 달하는 외환 수익 기회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국가 바이오디젤 보조금 재원의 핵심이 되는 팜유 수출세와 부담금 수입마저 폭락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현실은 환경과 식량 안보 위협 부메랑
에너지 자립이라는 대의명분이 가져온 그림자는 환경 문제에서 더욱 짙은 역설을 만들어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B50 이행을 통해 연간 4446만톤의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으며, 이는 화석연료 대체 측면에서 매우 선진적인 기후 변화 대응 조치라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실제 공급망 내부를 들여다보면, 환경 보호 정책이 도리어 환경 파괴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시아 팜나무 농장들은 수령 고령화와 기술 낙후 탓에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수년째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기술 개선 없이 B50이 요구하는 연간 350만톤 이상의 추가 수요를 조달할 방법은 농장을 물리적으로 넓히는 것뿐이다. 결국 칼리만탄과 수마트라 등지에서는 바이오디젤 공급량을 대기 위해 남아 있는 원시림과 열대우림을 벌목하고 불태워 개간하는 파괴적 관행이 더 빠른 속도로 재발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려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이 역설은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초래했다. 유럽연합(EU)의 삼림파괴방지법(EUDR)을 비롯한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서방 국가들이 무역 제재 카드를 빼 들기 시작함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중장기 수출 경쟁력은 오히려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강제적인 에너지 전환의 청구서는 실제 차량을 운용하는 산업 현장과 이를 지탱하는 국가 재정에도 직접적인 비용 부담을 발생시킨다. 경유에 식물성 기름 성분이 절반이나 섞이게 되면 연료의 점성이 높아지고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극대화된다. 이로 인해 정밀한 고압 직분사 디젤 엔진의 연료 필터가 막히거나 내부 부품이 부식되어 시동이 꺼지는 치명적인 고장 리스크가 현장에서 보고되고 있다.
정부는 시범 테스트 결과를 내세우며 안전성을 장담하지만 현장의 운전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차량 유지비 폭탄과 물류망 마비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 정책을 지원할 국가 재정도 임계점에 달했다. 그동안 정부는 팜유 수출세로 펀드(BPDP)를 조성해 보조금을 대왔으나, 수출 제한으로 기금의 수입원인 수출세는 토막이 난 반면 내수 보조금 지출은 폭증하면서 펀드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리스크와 반발 속에서도 프라보워 대통령이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비결은 압도적인 지지율과 사정 정치에 있다. 최근 80% 안팎까지 치솟은 고공행진은 온전히 그만의 철권 행보가 만든 결과물이다. 정권 교체기 전후 누적된 부패인식지수(CPI)의 폭락이라는 치명적인 대외적 치부를 돌파하기 위해 프라보워는 관료 조직과 민간 재벌의 오랜 유착을 ‘탐욕 경제학’으로 규정하고 고강도 사정 정국을 선제타격 카드로 꺼내 들었다.
국영 석유회사 퍼르타미나의 부당 브로커들을 구속하고 불법 벌채 대기업 자산을 압류하는 강경 조치에 국민들은 박수를 쳤고, 취약계층에 대한 무상 급식 집행이 맞물리면서 그의 대중적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강력한 권력을 쥔 그는 국부펀드 ‘다난타라(Danantara)’를 통해 국영기업들을 통합하며 시장의 자율 대신 국가의 명령이 지배하는 국가자본주의를 도모하고 있다. B50 강행 역시 대기업들이 수출로 챙기던 사적 폭리를 누르고 국가 안보를 위해 자원의 흐름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
국가자본주의 실험의 불확실한 미래
팜유를 부엌의 조리대에서 거둬 도로 위의 모터와 산업 엔진을 돌리는 연료로 태우려는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도박은 이미 시작되었다. 서민들의 식탁과 기사들의 작업장에서 이제 막 판이 돌기 시작한 이 도박의 성패가 어떻게 결판 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B50이 글로벌 위기 속 자국 경제를 구할 에너지 자립의 역사적 이정표가 될지, 아니면 민생과 산업 엔진을 동시에 태워버릴 자멸의 연료가 될 것인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선으로 인도네시아 팜유의 정치경제를 응시한다.
인도네시아는 팜유 50%를 혼합한 바이오디젤(B50)을 세계 최초로 전면 의무화하며 에너지 자립과 외환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식용유 가격 급등, 산림 훼손, 수출 감소, 차량 유지비 증가, 재정 부담 등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B50은 국가 주도 자원안보 전략의 시험대이자 경제·환경·민생이 충돌하는 복합 실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