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공포 이긴 ‘AI·전력망’ 수요…구리가격 사상 최고

2026-05-13 13:00:22 게재

톤당 1만4천달러 돌파 … 경기침체 우려 뚫고 전력 인프라·에너지전환 핵심 금속으로 재평가

미국과 이란 전쟁 충격으로 급락했던 국제 구리가격이 다시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전쟁 초기에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제조업 둔화 우려가 시장을 짓눌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은 구리를 ‘전력망·인공지능(AI)·에너지전환 시대의 핵심 전략 금속’으로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전쟁초기 급락 딛고 반전 성공 = 13일 런던금속거래소(LME)와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구리가격은 5월초 톤당 1만2900달러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빠르게 반등하며 11일 1만3673달러, 12일 1만4080달러를 기록했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원유·가스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비용 상승 우려가 확대되고 있지만 구리 수요는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초기 구리시장은 경기침체 가능성에 주목했다. 중동전쟁이 글로벌 제조업과 무역을 위축시킬 경우 산업용 원자재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본격화된 이후 구리가격은 급락세를 보였다. 전쟁 직전인 2월 27일 1만3440달러에서 3월 24일 1만1879달러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시장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중국의 강한 실물 수요가 시장 방향을 바꿨다. 중국은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으로 전력망·전기차·재생에너지·건설·제조업 전반에서 막대한 양의 구리를 사용한다.

블룸버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비용 급등 우려에도 중국의 강한 수요가 시장 충격을 상당부분 흡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페루광산 공급불안까지 겹쳐 = 여기에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세계 최대 광산기업 BHP는 최근 투자자 설명회에서 “AI 인프라 확대가 구리 투자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각국 정부는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고전압 케이블, 변압기, 냉각 시스템, 전력 공급 장비가 대규모로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구리가 사용된다.

시장에서는 이제 구리가 단순 건설경기보다 ‘전력수요 증가’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기차(EV) 확대 역시 구리 수요를 구조적으로 견인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차 한 대에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많은 구리가 사용된다. 충전 인프라와 송배전망 확대까지 포함하면 수요는 더욱 늘어난다.

공급측면 불안도 가격 상승을 자극했다. 세계 주요 구리 생산국인 페루에서는 광산연료 공급 우려가 확산됐다. 중동 위기로 글로벌 디젤 공급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광산운영 차질 가능성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구리는 세계 제조업과 투자흐름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경기민감 원자재다. 전기전도성과 열전도성이 뛰어나 산업 전반에서 사용된다.

시장에서는 구리를 흔히 ‘닥터 코퍼’(Dr. Copper)라고 부른다. 구리가격 흐름이 글로벌 제조업 경기와 산업활동 변화를 보여주는 선행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구리가격 급등은 제조업 원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에너지 안보 개념변화와 맞물려 = 이번 미국·이란 전쟁 이후 나타난 구리가격 흐름은 글로벌 에너지안보 개념 변화와도 맞물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석유와 가스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전력망 안정성, 핵심광물 공급망, 배터리, AI 전력 인프라,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등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AI 확산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송배전망과 변압기 투자 필요성이 커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구리의 전략적 가치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전쟁 초기에는 유가와 경기침체 우려가 시장을 흔들었지만 시장은 전력망과 핵심광물 부족 문제에 더 주목하고 있다”며 “구리는 현재 글로벌 산업 구조 변화의 중심에 있는 금속”이라고 설명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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