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한국형 협치'다│③ 이현우 서강대 교수
소통부재 … '공통공약 제도화'가 출발점
책임총리 등 제도도입 앞서 신뢰 회복이 먼저
정치권의 불신, 제도 문제 아닌 '리더십 부재'
절대과반 휘두른 민주당, '독주' '독선' 심판 받아
우리나라 정치가 건너야 할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불신'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크지만 여야간 불신도 작지 않다. 여야 의원간의 공식, 비공식 소통이 사실상 막혀 있는데다 대통령과 야당 의원들의 교류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는 불신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고 반목이나 혐오로 전이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국형 협치는 불신을 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17일 이현우 서강대 교수(사진)는 "우리나라 정치는 여야 대립의 수준이 매우 심각할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장벽"이라며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라고 했다.
여야간 불신의 고리는 최근에도 수없이 발견된다. 공식적인 만남 이외에 비공식적 사적 모임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 중진 의원은 "과거에는 회의장에서 싸우더라도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면서 "언제부터인가 여야 의원들 간에 사적인 모임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여야간 법안을 내며 의견을 절충해왔던 관행도 사라졌다. 같은 정당 의원들끼리만 공동 발의하는 게 일반화됐다. 보좌진들 역시 보수와 진보의 '주홍 글씨'를 서로 붙여놓고는 '배제의 정치'를 하고 있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 여당 상임위원장, 여당 초선 의원들과는 만나지만 야당 지도부와의 대화엔 매우 인색했다. 청와대가 요구해도 야당에서 거부했을 가능성 역시 적지 않다.
적극 지지층에 의한 진영대결국면이 강해지면서 여야간 대화와 타협이 사라졌고 대통령과 야당과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만남이나 소통은 어려워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번 대선 토론회에서 문재인정부의 청문보고서 미채택에도 임명을 강행한 비율이 30.4%로 이명박정부(23.0%), 박근혜정부(14.9%), 김대중정부(12.5%), 노무현정부(6.2%)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임을 강조했다. 청문보고서 미채택은 야당에 반대에 따른 것으로 인사실패와 함께 불통의 바로미터로 제시됐다.
◆여대야소보다 여소야대가 더 격전장 =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여대야소는 안정적이고 여소야대는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에 주목했다.
그는 "여대야소가 되면 국회의원수가 적은 야당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장외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몰리게 된다"면서 "버티고 발목잡고 막아서는 등 물리력이 동원되기도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여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국회 상황이 더 안정적으로 관리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20대 국회 후반기와 21대 국회 전반기에 국정을 운영한 문재인정부에서 여당은 모두 제 1당이었다. 20대에서는 123명으로 122명의 새누리당을 앞섰고 전반기와 후반기 국회의장직을 가져갔다. 21대에서는 무려 180석을 확보하면서 절대과반을 확보했다.
하지만 여야간 관계는 반목과 투쟁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연동형비례대표제 등을 진보진영의 규합으로 통과시킬 때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면서 법정공방까지 갔다. 민주당은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와 올해 3.9 20대 대통령에서의 패배의 이유 중 하나로 '독선' 독단' 내로남불'을 꼽기도 했다.
◆대통령이 열쇠다 = 이 교수는 대통령 리더십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야당도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큰 손해 본다, 그래서 파이를 키워야 하고 뭔가를 이뤄내도록 대통령이 시도를 해야 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에게도 "대통령한테 협조하면 제 1 야당한테 불리하다는 식의 제로섬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21대 총선에서 절대과반을 확보했을 때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뭔가 큰 일을 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해서 상임위원장 독식을 포함해 무리하게 진행했지만 국회 전체가 외면받고 민주당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국민이 생각하는 협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대선국면에서 보여준 여야 공통 공약을 제도화하는 것이 협치와 신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집권 초반에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강한 드라이브를 하다가 대통령도 자기 명예 다 훼손되고 야당도 상처 뿐인 영광만 얻게 된다"며 "신뢰를 쌓을 만한 손쉬운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제도 개선을 앞세우는 목소리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책임총리제도 얘기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하다. 성사되기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합의할 가능성이 적다"며 "(국회 추천) 책임 총리를 도입하면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했다.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먼저 신뢰의 실마리를 풀고 그 다음에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신뢰가 있지 않으면 다당제를 위한 선거법 개정이나 결선투표제 도입 등 정치개혁안을 통과시키기 어렵다."면서 "정치개혁의 핵심인 '선거의 룰'은 가치나 명분과는 별개로 거대양당에게는 유불리가 명확하고 이해관계를 따지다보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