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하영훈 울산대 의과대학 입학 예정

2025-01-22 09:13:18 게재

‘있어빌리티’ 아닌 위기지학 나를 위한 공부의 힘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의대를 지원할 때 특별히 중요한 것이 있을까? 최상위권 학생이 주로 지원하는 만큼, 우수한 학업 역량을 드러내려고 심화·고급 과목을 집중 이수하는, 소위 ‘있어빌리티’ 선택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한데 울산대 의과대학 입학을 앞둔 하영훈씨의 학생부에선 특별한 과목을 찾기 어렵다. 창·체 활동이나 탐구 활동 주제도 평범하다.

하지만 ‘왜’ 공부하고 ‘무엇을’ 궁금해했으며 ‘어떻게’ 파고들었는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공부(위기지학)에 집중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영훈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영훈 | 울산대 의과대학 입학 예정 (경남 동명고)

하영훈 | 울산대 의과대학 입학 예정 (경남 동명고)

사진 이의종

환경 문제 해법으로 과학기술 주목

어릴 적부터 뉴스 속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주변의 수학·과학적 현상에도 흥미를 느꼈다. 그만큼 호기심이 넘쳤다. 고교는 이를 해결할 다양한 무대를 제공해줬다. 수업은 물론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 점보학술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직접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생명과학 동아리와 학술제에서 심장 박동, PCR(중합 효소 연쇄 반응)의 원리, 환경유전자(e-DNA)의 개념과 사례를 훑으면서, 기후위기나 환경오염에 노출된 생명체의 위험성과 대처 방안에 관심이 커졌다. 뉴스는 물론 <통합사회> 등 사회 과목에서도 꾸준히 환경 문제가 언급되면서 영훈씨의 고민 또한 깊어졌다.

“제 세대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느껴요. 동시에 많은 물건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요. 환경과 관련한 궁금증을 학교 프로그램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과학기술이 답이 되겠다 싶더라고요. 편의성·경제성이 높은 기술이라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기가 보다 수월할 테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화학과 생명과학을 기반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목표를 갖게 됐죠.”

선행학습 안 한 수학 우등생의 비결은?

영훈씨의 이수 과목은 딱히 화려하지 않다. 다만 2학년 때 <수학Ⅰ·Ⅱ> <미적분> <확률과 통계>, <물리학Ⅰ> <화학Ⅰ> <생명과학Ⅰ>을 함께 이수한 점이 눈에 띈다.

“모두 중요한 과목이라 성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수학만 해도 고1 겨울방학 때 <미적분> 개념 수업을 들었을 정도로 선행을 거의 하지 않아 늘 시간이 빠듯했죠. 다만 기초 학문인 만큼 반드시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선택한 만큼 책임지려고 했어요. 다행히 제 공부법이 잘 맞아 성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수학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었죠.”

중3 때 국어 선생님께서 단원별 학습 목표를 큰 소리로 읽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고 공부하라고 조언해주신 후, 단원명과 학습 목표를 꼼꼼히 챙겼다고. 자연스레 매 수업에서 배워야 할 목표가 생겼고, 교과서에서 제시해주는 탐구 활동 소재나 아이디어를 직접 해보니 투박하게 심화 학습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고교에선 그 과정에서 얻은 궁금증을 수행평가 등 주제 탐구 활동이나 창·체에서 한 번 더 해결해봤다.

“특히 서로 다른 과목 간의 연결점을 발견하는 것이 효율적인 공부에도 도움 됐어요. <미적분>의 단원 명은 <수학Ⅱ> 미적분 내용과 같아요. <수학Ⅱ>를 심화 공부하면 <미적분> 학습이 수월해요. 선행을 하지 않았기에 수업에 더 집중했고, 기초를 탄탄히 다진 만큼 응용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었죠. ‘동고동락’이라는 학교 프로그램에서 읽게 된 <논어>에 ‘위기지학’이라는 말이 있어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하는 대신, 나를 위해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학생이 수업을 피할 순 없잖아요? ‘단원 목표’를 확인해 나를 위한 공부를 시작해보세요.”

의과학에 눈뜨다

방학 때마다 다음 학기 학습과 탐구 활동 계획을 세웠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관심이 있었던 2개 내외의 대주제에, 과목별 학습 목표를 정리하며 찾아둔 해당 과목 주요 개념이나 이전 학기에 진행했던 활동을 연계해 탐구 주제를 정리했다. ‘사회 과목에서 만난 환경 문제 해결안을 여러 과목에서 찾기’라는 큰 주제 아래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다룬 것이 대표적이다.

“모교는 학기마다 관심 주제를 탐구·발표하는 점보학술제를 열어요. 고2 때 뉴스에서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자주 언급됐어요. <생명과학Ⅰ>과 학술제에서 생명체 내 회복 시스템을 파악하다, 미세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했고요. 진주 남강, 삼천포 앞바다, 플라스틱 용기 속 커피 등 다양한 액체 속 미세 플라스틱 농도를 측정하고, 효과적인 제거법을 찾아보려고 2학기 수업을 둘러보며 계획을 세웠어요.”

미리 본 <확률과 통계>에선 시료의 ‘대표성’이 중요함을 확인했다. 다만 수학적으로 풀기가 쉽지 않아, 전문 장비 없이 미세 플라스틱 농도를 최대한 정확히 측정할 방법을 고민했다. 문득 <생명과학Ⅰ> 생태계 단원에서 배웠던, 현미경에 선을 그어 살피는 방형구법이 떠올랐다. 만타 가오리, 홍합, 미생물의 미세 플라스틱 제거 효능 비교 실험도 진행했다. 이는 또 다른 호기심을 일으켰고, 다른 학습과 탐구의 계기가 됐다.

“생태계 단원에서 생장곡선 그래프도 접했는데, 생명체·환경에 외부 물질이 주입됐을 때 나타나는 생명 메커니즘이 흥미로웠어요. 인공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면, 환경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으니까요. 가능성을 알아보고 싶어 그동안 배운 수학, 코딩, 생명과학, 화학 내용을 접목해 20가지 식물의 호흡 데이터를 수집, 인공 생태계에서의 호흡량을 예측하는 모델을 구현했죠. 이 과정에서 인슐린 생산, 신경 세포 이식 등 기술의 발전이 의료와 접목된 점이 인상적이라 의학에도 관심이 커졌어요. 생명 시스템을 관장하는 주요 장기인 뇌에 눈길이 가 뇌과학도 파고들었고요.”

‘나’다운 공부·활동이 곧 대입 전략

수시에선 의대 4곳과 화학생명공학과(부) 2곳에 지원했다. 논술전형으로 지원한 1곳 외에 울산대 의대,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성균관대 의대, 경상대 의대,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등 5곳에 합격했다.

“주요 대학은 생명공학과를 화학공학과 묶어 화공과로 선발하는데,화학공학은 물리의 비중이 크고 기계와 관련 깊어요. 생명체 시스템에 관심 있는 저는 연구직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의대가 더 흥미로웠고, 특히 연구 실적이 뛰어난 울산대 의대에 가장 끌렸어요.”

뇌과학과 세포학에 관심이 있지만, 입학해서 공부하다 보면 또 관심 분야가 바뀌지 않을까 싶다는 영훈씨. 대학 입학 후에도 일단은 재밌게 공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종합전형은 교과 성적부터, 활동, 수능까지 모두 소홀할 수 없어요. 버거울 수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결국 하나로 연결돼요. 필요하고 궁금한 것을 배우고, 호기심을 해결해보면서 깊이를 쌓다 보면 공부와 활동이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특히 학생부는 지금 입시에서 나를 대체하는 자료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자료를 ‘복붙’해 나열하는 건 힘만 들 뿐, 나를 보여줄 수 없어요. 빨리 해치우는 데 급급하지 말고, 깊이 고민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다 보면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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