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위기와 ‘아시아판 신군산복합체’
한·중·일 산업과 기술, 군수로 확장하는 구조…전쟁 선택하지 않는 정치의 역할 중요
중동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충돌은 선전포고 없이 시작되었지만 에너지와 해상 물류를 동시에 흔들며 세계경제 전반에 즉각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다. 에너지 수송로의 불안정은 곧바로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돼 원유와 LNG 가격 상승은 전력비뿐 아니라 석유화학 원료 가격까지 밀어 올린다. 특히 나프타를 비롯한 화학원료 비용 증가는 플라스틱과 합성소재, 반도체 공정 소재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에 해상운임 상승과 공급지연이 겹치면서 공급망은 더이상 효율을 위한 경제적 장치가 아니라 충격을 견디고 단절을 회피하기 위한 안보인프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을 무력충돌에다 산업과 경제가 결합된 구조로 이해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소환되는 개념이 ‘군산복합체’다. 이는 전쟁을 움직이는 힘이 군 내부가 아니라 산업 전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은 본래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1961년 1월 퇴임 연설에서 군과 방산기업, 정치권의 결합이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구조를 지적하며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군산복합체는 단순한 군수산업의 결합체를 넘어 산업과 기술, 공급망이 결합된 하나의 시스템에 가깝다. 통신위성과 드론, 반도체와 에너지, 물류망과 같은 핵심 산업이 서로 연동되며 전쟁 수행의 기반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산업 기반과 군수가 구조적으로 결합되는 현상은 특정 국가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아시아가 있다.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군사 및 금융질서 위에 산업과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축이 아시아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세계 반도체 생산의 70% 이상이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고, 배터리와 조선, 정밀기계산업 역시 이 지역이 주도한다. 여기에 지정학적 긴장이 겹치면서 아시아의 산업은 경제영역을 넘어 안보의 기반으로 전환되고 있다. 즉, 아시아의 산업 구조가 군산복합체로 기능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중국, 군사와 산업 결합해 영향력 확대
이 흐름은 이미 각국에서 확인된다. 중국은 ‘군민융합 전략’을 통해 산업과 군사를 결합하고 있다. 항공의 중국항공그룹(AVIC), 해군의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지상의 중국북방공업유한공사(NORINCO), 미사일의 중국항천과기그룹(CASC)과 중국항천과공(CASIC), 전자전의 중국전자과기집단(CETC) 등 5대 국유기업이 중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과 핵심 부품의 상당 부분이 중국 공급망에 의존했고, 글로벌 드론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따장창신(DJI)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는 전장의 운용 방식을 바꾸었다. 파키스탄과의 전투기 공동개발, 중동 지역에 대한 무인기 수출, 아프리카에서의 무기·금융 패키지 제공은 모두 군민융합 구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다만 이는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영향은 무기 제공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품과 기술, 공급망을 통해 전쟁수행의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나타난다.
‘평화 국가’ 원칙 폐기한 일본
일본은 또 다른 경로를 택한다. 일본은 전통적 의미의 군산복합체와는 거리가 있지만, 반도체 소재와 전자 부품, 첨단 소재를 통해 전쟁 수행 능력의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군산복합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 산업의 강점은 이중용도(듀얼 유스) 기술에 있다. 고성능 리튬전지를 탑재한 잠수함이 2020년에 실전 배치되었으며, 토레이 등의 탄소섬유는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항공기와 미사일 구조 소재의 핵심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유럽연합(EU)-일본 정상회담에서 방위산업 대화체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후, 4월 17일 ‘EU-일본 민간기업 방위산업 회의체’를 가동했다. 18일에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중심으로 호주에 고성능 스텔스 구축함 11척 (70억달러)을 공급하는 대형 계약이 체결되었는데 이는 2차대전 이후 최대의 방산수출이다. 그리고 21일, 일본정부는 ‘각의 결정’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승인을 통해 무기 수출 범위를 전면적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소총과 장갑차 미사일 전투기 구축함 등 주요 살상무기를 ‘방위장비·기술 이전 협정’ 체결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1967년 ‘무기 수출 3원칙’ 도입 이후 유지해 온 ‘평화국가’ 원칙을 사실상 폐기한 조치로 평가된다. 또한 일본의 대미 투자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군수산업과 밀접하게 결합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 조선소의 미 해군 함정 정비 참여, 미일 공동 무기생산과 기술개발, 그리고 반도체·에너지·핵심 광물 분야에 대한 투자는 전쟁수행 기반을 강화하는 산업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일본은 보이지 않는 기반 제공을 넘어, 점차 직접적인 군수 참여로 이동하는 이중 구조를 형성하면서 ‘구조적 군산복합체’를 형성해 가고 있다고 하겠다.
체계형 방산수출 모델의 한국
한국은 세 번째 모델을 보여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등을 중심으로 한 방산산업은 미사일과 레이더, 지휘통제 체계를 통합해 수출하는 체계형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방산수출은 2025년 240억달러 수준으로 급성장하며 세계적인 방산 수출국으로 부상했고, 폴란드에 전차·자주포·전투기 패키지 수출, UAE에 지대공 미사일 수출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기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구축함과 잠수함 등 전함을 생산하는 동시에 상선까지 건조하며 해양 안보와 물류를 동시에 지탱하는 산업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동맹구조에서도 확인된다. 한미 간 군수협력은 무기 도입이나 기지 제공을 넘어 기술과 산업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사일과 우주, 사이버 영역에서 공동운용과 기술연계를 강화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며,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같은 전략자산 건조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산업 시스템이 군사 기능과 결합해 내수 및 수출을 확대하는 ‘체계 수출형’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편 북한의 경우는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중국·일본·한국이 산업과 기술, 공급망을 결합한 군산복합체로 이동하고 있다면, 북한은 군사목적이 경제를 직접 지배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외부 전장과의 연결이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폐쇄형 군사경제가 선택적으로 외부와 연계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개방이라기보다 제한적 연결에 가깝다.
전쟁 중심 산업구조 중심에 선 아시아
결과적으로 아시아에서는 산업이 군수로 확장하는 구조와, 군수가 경제를 압도하는 구조가 병존하고 있다. 물론 전쟁은 정치적 결정과 군사전략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기술 기반이 필수적이며, 오늘날에는 이 기반이 전쟁의 양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 점에서 군산복합체는 특정 산업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논의는 전쟁이 재래식 수준에 머문다는 전제 위에 성립한다.
만약 충돌이 전술핵 단계로 넘어간다면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산업 기반은 전쟁을 지속시키는 구조가 아니라 순식간에 무력화될 수 있으며, 여기서 작동하는 것은 상호확증파괴 논리다. 그럼에도 군산복합체의 확대는 역설을 드러낸다. 오늘날의 군산복합체는 핵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구조가 아니라, 핵전쟁으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유지되는 재래식 전쟁의 기반일 가능성이 크다. 전쟁은 부인되지만 계속되고, 산업은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관리하기 위해 재편되고 있다.
아시아 신 군산복합체의 등장이 곧 전쟁의 필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 구조는 선택을 제약할 뿐 전쟁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전쟁을 전제로 한 산업구조가 형성되고 있고 그 중심 현장에 아시아가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전쟁으로 가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경제와 산업이 발전하는 구조를 회복하도록 정치가 의식적으로 앞장서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