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동맹 위기 키우는 공직기강 해이

2026-04-29 13:00:01 게재

한국의 안보에 동맹은 대체불가능한 요소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동맹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존속과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한미동맹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대의를 위해서 때로는 우리 주권의 일부를 유보하기도 한다. 미군이 보유한 전시작전통제권이나 한미원자력협정 같은 것이 그것이다.

최근의 국내외 정세는 과연 이러한 논리적 구조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한국의 안보에 강력한 최후의 보루였던 미국이 한국의 안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 근래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 동맹국의 참전을 요구한 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모든 동맹국이 공통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외면했다. 미국이 공격을 받은 전쟁이 아니고 뚜렷한 명분도 없이 선제적으로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게 두고 보라며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쿠팡사태 무마 압력, 가치동맹 붕괴의 신호

쿠팡사태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빌미로 한 한미정보공유 중단 등 미국의 압박은 차원이 다른 동맹 리스크이다. 만약 쿠팡사태를 무마한다면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체를 흔드는 일이 될 것이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은 3370만 고객 계정의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주문 이력이 노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인구 대부분이 해당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국가가 이러한 사건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 행사다.

그런데 쿠팡은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을 움직여 이를 미국기업에 대한 차별이나 표적 규제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쿠팡에 대한 수사나 처벌이 무마된다면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적 사법체계를 가진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업의 불법적 행위에 대한 수사를 핵추진 잠수함 등과 같은 안보현안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은 한미동맹의 숭고함과 순수성을 훼손하는 치명적 요인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한미동맹이 미국에 대한 한국의 종속을 의미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게 되고 장기적 관점에서 한미동맹이 정당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미국 일개 기업의 로비 때문에 한국이라는 피로 맺은 동맹국의 법치 시스템을 파괴하고, 점령군에게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보지도 못하는 피점령국의 국민처럼 한국인들에게 수치심을 강요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인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 될 수 없다.

정동영 장관의 ‘북한 구성시 핵시설’ 언급에 대한 미국의 간섭은 도를 한참 넘었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 어디를 봐도 동맹을 위태롭게 할만한 표현이 없다. 정 장관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보고를 인용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구성’에 대한 언급은 여러 핵시설이 있는 지역을 열거하면서 우연히 나온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성’이 여기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 발언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 앞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국무위원으로서 국회에 보고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미국에서도 장관들이 의회에 출석해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한다. 한국이 세계 5위의 군사강국,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을 미국의 종속적 위치의 하위동맹으로 취급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공직사회의 기강부터 바로잡아야

대통령의 조사 지시가 보여주듯이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우리 내부다. 초강대국 간의 전략경쟁과 미국 중심의 패권체제의 붕괴, 나토(NATO)를 비롯한 동맹시스템의 동요,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같은 우리의 운명을 가를 중대한 사안들 앞에서 일부 공직자들은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동영 장관 관련 사안은 안보 관련 부서의 내부자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외부로 유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동맹현대화와 외교정상화에 전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직기강 해이는 동맹 리스크를 내부에서 키우는 자해 행위와 다름없다. 동맹의 리스크를 관리하려면 먼저 공직사회의 기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한범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국방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