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개조를 시작한다 ③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계엄·탄핵 거치며 갈등 최고조…대통령이 화해·포용 앞장서야”

2025-05-15 13:00:30 게재

이념·지역·세대·계층·젠더갈등에 ‘층간’ 갈등까지 ‘갈등공화국’

승자독식제도로 무너진 비례성, 민주사회에 지장 … 개헌해야

빈번하게 행사되는 탄핵·거부권 안돼, 일방적 힘의 논리 자제

국민통합 대타협기구 만들어야 … ‘개시개비’의 자세로 대화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의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진단은 “어느 때와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최대 위기”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1977년 9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5선 국회의원과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격랑의 정치권과 현대사를 48년간 지켜본 정 회장의 말이기에 무게감이 실렸다.

12.3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파면, 그리고 조기대선에 이르기까지 어느 때보다 국민 분열과 진영간 대결이 격화된 상황의 근원엔 정치실종이 있다는 점도 뼈아픈 점으로 지적했다.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사라지면서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어느 때보다 큰 위기를 맞았기에 그래서 더욱 국민통합과 국가대개조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최고조에 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정 회장은 13일 국회 헌정회관에서 이뤄진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국민통합이 제1의 시대적 과제라는 상황인식을 뜻있는 국민들이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면서 정치회복, 개헌을 통한 제왕적 대통령제, 용서·화해·포용·통합의 차기 리더십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사진 이의종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진단하나.

12.3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의 탄핵, 파면으로 이어지면서 어느 때보다도 국민분열, 진영간 대결이 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망과 연대성이 적지 않게 이완되어 이념, 지역, 세대, 계층, 젠더 등 수많은 갈등이 양상되고 있다. 이런 갈등은 공동체의 연대로 해소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하지 못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국민통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갈등관리의 중심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갈등으로 인한 국가공동체의 이완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기만 한다. 정치적 대립과 반목이 모든 갈등을 촉발하는 시발점이자 연원이며, 증폭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는 지적이 많다. 흔히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오랜 정치 경험에 비춰볼 때 지금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어느 때와도 비견할 수가 없을 정도다. 최대 위기다.

■정치적 양극화가 상당히 심각해 보인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원칙인 서로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Agree to Disagree)는 다원성에 대한 이해와 인정의 폭이 좁아진 것 같다.

우리 정치의식구조의 특성인 배타성과 편협성 때문이다. 농경문화 사회의 유산인 대가족 지역공동체 중심 생존패턴이 생존하기 위한 경계심을 야기해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인 특성을 키워왔다. 편협주의도 강하다. 대가족 제도와 지역공동체를 떠나게 된 소외감과 고독감의 보상으로 편협주의가 강화됐다.

대통령제와 승자독식제도로 갈등과 분열이 증폭된 측면도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 정치, 선거에 있어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에 의한 승자독식제도로 인해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된 정치권력이 형성됐다. 이로 인한 과도한 영향력과 이에 젖은 정치문화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켜 왔다고 본다.

적당한 권력분점이 이뤄지지 않는 대통령제에서 권력을 잡지 못한 집단과 그의 지지자들은 격렬한 투쟁밖에는 생존방법이 없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 소선거구제는 대표성과 비례성이 무너진 승자독식의 대표적 제도다. 이로 인해 소수 유권자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아 불만을 최소화하는 민주사회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현 한국사회는 불신사회의 면모도 보인다. 국민들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권위를 부정하고 한다.

우리 사회는 상호불신과 다양한 종류의 갈등이 분출되고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갈등 공화국이라고 혹평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니까.

갈등의 종류도, 이념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 노사 갈등 노노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 이제 아파트 층간갈등까지 있다. 갈등이 일상화됐다. 전경련이 우리나라 갈등상황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24년 우리나라 갈등지수가 OECD 30개국 중 3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정부의 갈등 관리 능력은 27위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통계지표로 나타나는 것보다도 내용과 질로 들어가보면 더 심각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온갖 갈등이 일상적으로 뒤엉켜 복합적,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되고 갈등 당사자 간에는 극도의 적대감으로 분노하고 상대의 모든 것을 비방한다. 갈등관리의 중심역할을 하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부추기는 형국도 보인다.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은 뭘까.

다섯 가지를 생각해 봤다. 첫번째는 정치회복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다원성에 대한 이해와 인정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 단시간 내에 정당 정치지도자 사회지도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민주주의 소양을 키우는 학교교육 내지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정치가 전쟁상태를 방불케 하는 신뢰의 실종 상황 속에서 먼저 정치를 회복시켜 상생 협치 통합의 길로 가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 사이에서도 상호 이해와 인정의 폭을 넓혀야 한다. 특히 정치권에선 대안세력으로 보수파와 진보파의 상호인정, 이해와 동시에 존중하는 태도를 갖도록 소양을 길러야 한다.

일방적 힘의 논리도 좀 자제되어야 한다. 끈던진 논의나 협상도 없이 다수결의 원칙으로 쉽게 결론 내고 한쪽에서는 거부권 행사로 대응하는 일방적 힘의 논리식 정치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 빈번하게 행사되는 탄핵도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30회에 이르는 탄핵권의 상습적 행사는 지극히 우려된다.

두번째는 개헌인데 제왕적 대통령제를 민주적 제도로 바꿔야 한다.

세번째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용서·화해·포용·통합 운동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다. 여야, 보수진보, 탄핵찬반, 동서지역 등으로 양극화 내지 다극화된 나라를 대통령 스스로가 용서하고 화해하고 포용하고 통합의 대통령으로 모범을 보이며 나라를 이끌고 가야 한다.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을 모범사례로 삼아야 한다.

네번째는 사법부와 언론의 국민통합적 역할이 있어야 한다. 사법부는 행정과 정치가 풀지 못하는 갈등들을 재판을 통해 해결하고 잠재우는 최후의 보루로서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재판 결과에 의문과 시비가 빈발하는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언론의 역할도 중차대하다. 언론이 사회적 갈등을 직필로 의제화하고 관리 기제의 작동을 감시, 독려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내야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통합 추진을 위한 대타협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여야 정당 시민사회 종교 등 정치사회적 지도자와 갈등조정 전문가들이 두루 함께하는 정치사회적 국민통합 대타협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여야와 사회 단체 대표들이 정치의 중간지대에서 개시개비(皆是皆非, 각각의 주장이 모두 옳으면서도 또 동시에 그르기도 함)의 자세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해법을 논의해 갈등의 근원을 푸는 정치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치지도자의 결단으로 가능하다.

지금이 적기다. 탄핵찬성과 반대가 극렬하게 대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민통합이 제1의 시대적 과제라는 상황인식을 뜻 있는 사람들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개헌 논의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셨는데.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민주적 제도로 바꿔야 한다.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는 12.3비상계엄사태의 교훈이다. 느닷없이 대통령이 한순간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계엄을 선포하게 된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가능성이 헌법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각책임제나 권력분산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 둘째는 국민적 요청이다. 국민들의 6할에서 7할이 개헌을 요구한다.

셋째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다. 나라의 정치선지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넷째는 가장 크고 절박한 정치개혁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1987년도 개헌 이후 38년 동안 여덟 분의 대통령(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은 물론이고 정당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걸었거나 정치적 약속을 했다. 그래 놓고선 ‘꿩 구워 먹은 자리’가 되곤 했다. 내년 지방선거 때는 반드시 개헌 국민투표가 함께 치러져 개헌이 되어야 한다.

■국민통합과 지방분권은 뗄 수 없을 텐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선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권력집중을 막고 지방정부에 분산시켜야 한다.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국방, 외교 권한을 제외한 민원 관련 업무를 대폭적으로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방안이 헌법과 법률에 보장되어야 한다. 국회에 양원제를 도입해 상원이 지역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 시점에 어떤 지도자, 혹은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탄핵 이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원상회복시키고 선진화를 추진하는 정치인이어야 한다.

느닷없는 계엄선포가 2차대전 이후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85개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먹칠을 한 불행을 겪었다. 다시 저력 있는 나라로 평가받기 위해선 국제적인 신인도를 높이도록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원상회복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정직하고 유능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소망한다.

용서·화해·포용·통합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정치를 회복시켜 상생, 협치, 통합의 정치를 만들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거의 전쟁상태와 다름 없는 현 정치상황, 사실상 정치상실, 정치실종 상태에서 정치를 회복시켜 상생, 협치, 대통합의 민주정치로 이끌어가는 큰 정치지도자가 선출되기를 바란다.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고 민주적 권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 더 덧붙이라자면 차기 대통령은 행정의 달인보다는 입법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친화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중심축을 국회로 옮겨와야 한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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