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발주 공사도 산재사망 안전지대 아니다
올해 건설 사망사고 10건 중 4건 … ‘엄단’ 경고에도 도로공사 현장서 1명 사망
경북 안동에서 벌목 작업을 하던 한국도로공사 하청 업체 소속 30대 노동자가 나무에 깔려 숨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연일 기업들을 압박하는 가운데 공공부문의 안전관리 역량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고용당국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9시 39분쯤 안동 풍산읍 노리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 인근 터에서 고사목을 자르던 작업자 A씨가 나무에 깔리는 사고가 났다.
A씨는 119 소방대원들에 의해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는 A씨 등 작업자 5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속한 업체는 한국도로공사와 도급계약을 맺고 고속도로 관련 조경 작업을 맡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가 나자 벌목 작업을 중지시켰다. 또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 등을 확인하는 등 사고 조사에 착수했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공발주 각종 공사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올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10건 중 4건이 공공발주 작업장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14일 건설공사안전관리종합정보망(CSI)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부터 전날까지 보고된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 현장 건수는 119건으로 집계됐다. 다수가 사망한 사고가 있어 총 사망자 수는 내국인 111명, 외국인 17명 등 128명으로 집계됐다.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에 따라 CSI에는 사망 또는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의 인명 피해, 1000만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건설 사고가 보고된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는 올해 2월 부산 기장의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공사 현장 사고로 내부 인테리어 작업 중 6명이 사망했다.
사망사고 공사 발주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민간 발주 공사에서 71건(59.7%, 76명 사망)이 발생했고 공공발주 공사에서는 48건(40.3%, 52명 사망)이 발생했다. 사망사고 10건 중 4건은 공공 발주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건진법에 따르면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발주청은 부실시공 및 안전사고 계획 수립은 물론 안전계획이 제대로 현장에 적용되는지 관리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공공발주 현장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이 대통령을 전면에 나서게 한 발단도 공공발주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다.
지난달 6일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지리정보시스템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을 위해 맨홀 안에서 작업을 하던 재하청 일용직 노동자 B씨가 실종됐다가 하루 뒤인 7일에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가스중독으로 추정됐다. 또 B씨를 구하러 맨홀 안으로 들어갔던 업체 대표 C씨도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다가 사고 발생 8일 만인 7월 14일 사망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엄중 지시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특단의 조치를 지시한지 3주 만에 유사한 사고가 또 발생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금천구 수도 누수공사 현장 맨홀 안에서 작업하던 70대 남성이 질식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음 날 사망했다. 이날 공사는 공공기관인 서울아리수본부가 발주한 작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공발주 사망사고 현장의 특징 중 하나로 이른바 ‘저가 낙찰’을 꼽았다. CSI 등에 따르면 공공 발주 사망사고 48건 중 41건(85.4%)은 낙찰률(발주자 예상가격 대비 입찰금액 비율)이 90% 미만이었다. 이는 민간발주(20.0%·14건) 공사의 4배 이상이다.
또 공사인력이 20명 미만인 사고현장도 32건(66.7%)에 달했다.
저렴한 가격에 공공 사업을 따낸 시공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투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빠른 공사와 예산 맞추기 압박을 더욱 강하게 받는다는 게 업계의 토로다. 앞서 발생한 인천과 서울의 맨홀 질식사고 현장에서는 작업전 산소 농도 측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작업자들도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기업의 안전투자는 물론 공공부문의 저가 낙찰 관행도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은 지난 5월 ‘국토정책 브리프’를 통해 “(공공 발주 공사) 입찰 참가자들이 공사 수행에 적정한 투찰가를 제시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는지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며 “지방계약법 등에서 명시하는 조건들을 조정해 입찰기업의 투찰금액 상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