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제도화 논의 본격화…“공시의무 법적 근거 필요”

2025-10-01 13:00:03 게재

주요국,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인증 법제화 추진 중

국내 자본시장, 이에 대응할 정보인프라 정비 시급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 법제화, 증시 발전 선결과제

현 정부가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공시 기준과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국정 과제를 수립하면서 ESG 공시제도화 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미 해외 주요국에서는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인증 법제화 등을 통해 ESG 공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도 지속가능성 정보에 대해서도 재무 정보와 대등한 수준으로 양과 질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공시→인증→평가로 이어지는 지속가능성 정보인프라 정비가 시급하다. 이는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ESG 정보의 신뢰성과 비교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주식시장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필수 선결과제다.

국회 ESG포럼은 9월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ESG 공시 제도화 방안 토론회 자본시장법 개정안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제공

◆국회ESG포럼,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 모색 =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기후 위기와 국제 통상 질서의 변화 속에서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특히 ESG 공시제도화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과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핵심 제도로,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각국에서도 주요 정책 과제로 다뤄지는 상황이다.

제22대 국회ESG포럼은 9월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ESG 공시제도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하고 국내 ESG 공시 법제화의 시급성과 방향성을 재확인했다.이날 세미나 기조연설에 나선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인 PRI(책임투자원칙)의 네이선 파비안 지속가능시스템 최고 책임자(CSSO)는 “ESG공시는 투자를 위한 필수적인 정보로, 정확한 데이터는 더 나은 의사결정과 기업의 자금조달을 가능하게 한다”며 “투자자 관점에서는 각국이 신속히 ISSB 기준을 도입해 글로벌 공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PRI에는 현재 전 세계 60여 개국 5000곳 이상의 투자기관이 가입되어 있다.

글로벌 ESG 동향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발제에서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는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국의 ESG 공시 제도화 동향과 기업의 대응 전략을 소개했다. 김 이사는 “미국 정치권 압박에 ESG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던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겉으로 사용하는 용어만 바꾼 뒤 관련된 자산은 계속 늘리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들의 ESG 정책 확대가 이어지고 있어 한국도 이를 따라갈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ESG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방안으로 △ESG 기본법 제정 △국민연금의 중점관리 사안에 대한 실효성 제고 △기업의 자발적인 안전정보공개 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했다.

◆국내 기업도 국제 기준에 부합해야 =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이민경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주제로 주요국의 지속가능성 공시 및 인증 법제화 동향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이슈 등 환경·사회적 변화가 기업 경영 및 자본시장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지속가능성 정보의 공시·인증 법제화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주요 국가에서 추진 되어왔고, 전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에 대한 법제화가 명확한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투자자는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 여부와 신뢰성을 핵심 투자 요소로 고려하고 있으며, 국내 자본시장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인프라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또 최근엔 환경(E)뿐만 아니라 산업안전 등 사회적 요소(S)의 공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교수는 ”법적 근거 없이 ESG 공시를 의무화하기는 어렵다“며 “인센티브 방안, 면책 근거 마련, 단계적 시행 등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입법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이 교수는 “EU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들도 2028년부터는 보고를 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며 “이를 고려하면 국내 수출 대기업은 EU 시장에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의무가 발생하는 반면 국내 제도 미비로 국내에서는 동일 정보가 공시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는 이미 회계연도 2017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비재무정보 공시를 의무화했다. 2024년부터는 기업 규모에 따라 사업보고서 내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에 따른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 의무를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또 2028년부터는 일정 규모 이상의 비EU기업도 지속가능성 정보의 공시의무가 적용된다.

일본의 경우 2023년부터 유가증권 보고서를 통한 지속가능성 공시의무를 부과했다. 호주는 2024년 9월 회사법 개정으로 연차보고 사항에 지속가능성 공시를 의무화했다.

◆"2026년부터 공시 의무화" 촉구 = 한편 국회ESG포럼은 국내 기업 및 금융기관의 ESG 경쟁력 강화와 ESG 선순환 생태계 촉진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지난해 10월 여야 국회의원 45명이 참여해 발족한 초당적인 정책 연구 포럼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국회ESG포럼 공동대표인 민병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개회사에서 “ESG 공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기업 경영의 필수 조건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며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희용 국회의원(국민의힘) 또한 “우리나라 역시 국제사회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체계적인 논의와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주요국은 의무화를 통해 ESG 공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반면, 국내는 금융당국의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자원 배분을 못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금융당국은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사업보고서 제출 법인이 회계연도 2026년부터 사업보고서를 통해 ESG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UNGC) 사무총장은 “국제사회는 이미 ESG 공시를 기업 평가의 공통 언어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ESG 공시는 이제 기업의 자율적 보고를 넘어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를 뒷받침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 역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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