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학교로 가다 4.0’

트럼프 2.0시대, 국내 농업분야 전망

2025-11-13 13:00:01 게재

급변하는 자유무역협정, 국제 이슈 읽고 데이터 익힌다

강원 설악고·경기 경민고 수업 현장 … 미국 관세 압박과 FTA 주요 정책 다뤄 ‘눈길’

우리나라는 세계 59개국과 22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FTA는 국가 간 상품이 이동할 때 서로 관세나 무역장벽을 낮추거나 없애는 협정을 말한다. 자유무역 기조가 확대되면서 세계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미-중 무역 갈등이 심해지고 지난 연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 강도 높은 관세 압박을 가하는 한편 FTA 개정도 요구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보호 무역 기조가 강해지는 상황이다.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는 FTA를 통해 주요 수출품의 경쟁력을 확보해온 한편 농업 분야는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어려움 속에서 스마트팜과 바이오 기술, 파생 서비스 시장 확대 등을 바탕으로 재도약을 준비해 온 우리 농산업은 달라진 세계 무역 정세에 또 한번 고비를 맞았다. 내일신문은 2022년부터 고교생 데이터 교육을 통해 FTA가 국내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탐구해왔다. 이전과 달라진 트럼프 2.0 시대, FTA와 우리 농산업의 전망과 해법을 함께 찾아봤다.

내일신문과 내일교육은 올해 ‘FTA, 학교로 가다 4.0’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전국 10개 고교에서 300명이 참여했다. 참여 학생들은 2~3일에 걸쳐 ‘FTA 데이터를 활용한 통계와 회귀분석 실습’ ‘FTA 이행과 농업 부문의 파급 영향’ 수업을 들은 후 조별 탐구 주제를 선정했다. 이후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할 예정이다.

참가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서 접하기 어려운 통계·분석법을 공신력 있는 자료로 직접 다뤄볼 수 있었다는 점과, FTA에 수학·경제·사회 개념을 접목해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는 점이 의미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미국 관세 정책 사례로 본 FTA의 이해와 전망’을 수업에 반영, 세계적 이슈인 미국발 관세 압박과 FTA를 연계해 직접 파고들 수 있었다는 점을 호평했다. 강원 설악고와 경기 경민고에서 수업이 진행됐다.

◆강원 설악고 =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우리 농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난 10월 22일 강원 설악고 ‘FTA, 학교로 가다 4.0’ 두 번째 수업에서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교 김영준 교수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미국발 관세 압박을 정면으로 다룬 셈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얼마 남기지 않고, 연일 미국과 우리나라의 무역 협정 과정을 다룬 보도가 쏟아지는 시점이었던 만큼 학생들의 시선이 연단에 집중됐다.

강원 설악고에서 김영준 강원대 교수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배지은

김 교수에 따르면 국가와 국가 간 무역을 할 때 국내 제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관세다. 가령, 국산 농산물의 생산 단가가 개당 3000원이라고 치면, 판매가가 개당 1000원인 외국 농산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때 국가가 외국 농산물에 개당 4000원의 관세를 부과하면 소비자는 구매가는 개당 5000원 이상이 된다. 관세 외에 검역 절차를 까다롭게 하거나 수입 총량에 제한(쿼터)을 두는 방식 등도 역시 국내 시장 보호책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업이 수행하는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역할에 비해, 농업 부문의 구조적 취약성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체계적인 보호 정책이 요구된다. 하지만 FTA가 확대로 상호 관세가 면제된 국가가 늘어나면서 국내 농업 산업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김 교수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협정을 깨고 전방위적인 고관세 압박에 나선 배경도 비슷하다”라며 “FTA와 같은 자유무역으로 미국 산업은 피해를 보고, 상대국은 그만큼 이익을 봤으니 조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태세 전환으로 수출 경제 중심인 우리나라는 변화가 불가피한데, 그 해법으로 교역 다변화가 부상하고 있다고 알렸다. 미국과 중국을 벗어나 아세안,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신흥국과의 경제·무역 협정을 통해 신규 시장을 개척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일본·호주·캐나다 등 11개국이 주도하는 세계 4위 규모의 자유무역협정)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결국 국내 농가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신흥국은 인건비가 낮고 농산물과 경공업 제품을 주로 수출하는 만큼, 국내 농가에 악재일 가능성이 높다”라며 “CPTPP 가입 시 기존 FTA에서 개방되지 않았던 쌀·보리·감자·감귤·오렌지 등 민감 품목과, FTA 미체결국으로부터 수입이 예상되는 육류·열대과일 등에서 상대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이미 농산물 판매 수익 정체와 농가 소득 격차 심화로 농촌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데 농업이 식량 안보의 주축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필리핀이 쌀 생산을 포기했다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수입이 막혀 곤란했던 적이 있음을 떠올리면 우리 농가의 경쟁력을 확보·지원을 더 늦춰서는 안 될 시기”라고 주장했다.

또 학생들이 직접 예상되는 관세 변화가 농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직접 계산해볼 수 있게 안내했다. 계량경제학 기초 개념에 기반해 가격 변화율, 수요 탄력성(가격 1% 변화 시 수요량 변화율), 공급 탄력성(가격 1% 변화 시 공급량 변화율) 등을 계산하는 법을 알려주고, 품목별 수요·공급 데이터 제공해 관세 인하 시 생산자 손실과 소비자 이익 수치화해 영향 분석하는 법을 상세히 소개했다.

학생들은 이를 일상에서 접해온 뉴스의 배경을 자세히 파악하고, 수학 개념을 활용해 직접 사회 문제를 다뤄볼 수 있게 돼 좋았다고 평가했다.

설악고 3학년 이황제 학생은 “관세나 FTA라는 단어는 봤지만 의미를 잘 몰랐는데 수업을 통해 제대로 이해하게 됐고, 미국의 관세 압박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체감했다”라며 “수업에서 배운 수학 개념과 공식으로 우리 농산품의 현황을 계산할 수 있게 돼 탐구 활동을 통해 우리 농업의 상황을 파악하고, 세계화 속에서 우리 식량 주권을 지킬 방법을 모색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설악고 남궁연 교사는 “일반 고교에서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뜻깊은 수업이었다”라며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 학생에게 대학 교수 강연과 피드백 등은 시야를 넓히고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한편, 수업을 맡은 김 교수는 “최근 국제적 이슈를 수업에 반영하는 점이 새로운 시도였는데, 국제 무역과 경제에 관한 시야를 넓혀 줄 수 있어 보람됐다”라며 “농어촌의 현실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경기 경민고 = ‘FTA 체결 여부, GDP, 환율은 한국의 오렌지 수입금액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난 10월 27일 경기 경민고의 학생들이 마주한 질문이다. 이날 학생들은 ‘FTA, 학교로 가다 4.0’의 첫 번째 수업에 참여해 엑셀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이미지화·회귀분석의 기초를 실습했다. 수업은 한국의 오렌지 수입액과 FTA 체결 여부, GDP, 환율을 정리한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 더욱 생생하게 이뤄졌다.

경기 경민고 학생들이 FTA 교육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수업 진행은 경기 경민고 조성태 교사가 직접 맡았다. 조 교사는 3년 연속 FTA 데이터 교실에 참여한 베테랑으로, 두 번째 해에는 본선에 통과해 결선까지 진출한 바 있다. 평소 수학 수업을 담당해 통계에도 능숙한 조 교사는 자신의 취미가 학생 성적 데이터를 엑셀로 분석하는 것이라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수업은 엑셀의 기초 활용법과 평균, 표준편차의 개념을 설명하며 시작됐다. 최근 학생들은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경험은 적다. 게다가 2학년은 교육과정상 ‘확률과 통계’를 이수하지 않아 기본 수학 개념을 어려워한다. 조 교사는 엑셀의 기본 기능과 연산자를 직접 시연하고, 학생에게 익숙한 내신 성적을 예로 들며 이해를 도왔다. 능숙한 설명 덕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던 학생들도 원활하게 실습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은 한-미 FTA가 오렌지 수입금액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한국의 오렌지 수입액과 GDP의 관계를 확인했다.

상관계수가 양수이면 GDP가 늘어날 때 오렌지 수입금액도 늘어나는 양의 관계이고 음수면 그 반대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두 변수는 양의 관계임을 밝혔다. 아직 데이터 분석에 서툴러 여러 오류가 발생했지만, 자리를 넘나들며 친구와 의견을 나누고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데이터 분석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오렌지 수입금액과 GDP, 환율, FTA 체결 여부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다중 회귀분석’에 도전했다. 앞서 분석한 내용에 더해 오렌지 수입액과 환율은 음의 관계, FTA 체결 여부는 양의 관계임을 확인했다. 또한 이번에는 ‘p-값’을 바탕으로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확인하는 과정까지 거쳐, 보다 정확한 데이터 해석의 기초를 닦았다.

다중 회귀분석은 이후 학생들이 가설을 검증하고 주장의 근거를 세우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조 교사는 이와 관련해, “통계 자료는 인터넷에 검색하기보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나 KOSIS 국가통계포털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만 필요한 내용만 담고 있지는 않으므로, 어렵더라도 자료를 내려받은 뒤에는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엑셀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신선한 경험으로 남았다. 수업이 끝난 후 경민고 2학년 이시연 학생은 “막연하게 생각하던 엑셀을 활용해 다양한 자료를 분석할 수 있게 됐고, 오렌지 수입금액을 회귀 분석하고 값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속 의미를 스스로 찾아낸다는 성취감을 느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수업을 맡았던 조 교사는 “FTA 데이터 수업은 학생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FTA 관련 내용과 엑셀, 데이터 분석까지 다룰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FTA가 얼마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올해로 3년째가 됐다. 자신만의 강점이 된다는 생각에 학생 사이에서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정나래 송지연 기자 lena@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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