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분쟁 조정,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기에 어렵다

2026-01-16 13:00:04 게재

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는 행정서비스로서 법률에 의한 심판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노사 일방이 조정위원의 조정안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요건으로 조정전치주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노동분쟁의 진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조정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측이 있는가 하면, 솔직하게 조정전치주의 때문에 노동쟁의권 확보 차원에서 조정신청을 했다며 괜한 시간을 빼앗지 말고 일찌감치 ‘조정중지’를 요구하는 노조도 있다.

노조는 위원장 선거 앞두고 ‘조기타결’을, 사용자는 오랜 갈등 매듭을 원했지만

최근 A 제조업체의 조정 사례는 이러한 조정 현장의 복잡미묘한 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발단은 2025년 노사의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시작됐다. 사측은 2024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려 했고, 노조는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팽팽히 맞섰다.

조정위원들은 1차 조정 회의에서 노사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청취한 결과 노사 양측에 오해나 감정적인 갈등 요인이 없고 임금인상안에 대한 1~2%의견 차이는 조정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조정위원들은 2차 조정회의일까지 추가 교섭을 충분히 해 이견을 조율할 것을 주문했다

2차 조정 회의에서 노사는 상여금·제수당의 기본급 산입과 평균 7.6% 임금인상이라는 전향적인 ‘새로운 잠정합의안’을 도출해왔다. 노조 집행부는 다가올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조기 타결이라는 성과가 절실했다. 사측은 이 기회에 오랜 갈등을 매듭짓고 싶어 했다.

조정위원들은 선거를 앞둔 노조 내 갈등에 의한 부결 가능성을 우려했다. 하지만 노사는 “노동위원회가 권고안을 만들어 권위를 실어주면 조합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며 간곡히 요청했다. 결국 타결 일시금 300만원을 얹은 ‘조정권고안’이 탄생했고 노사는 가결을 확신하며 환하게 웃으며 회의장을 떠났다.

노동위 권위까지 실은 조정권고안, 조합원 찬반투표서 부결

그런데 사측 교섭위원으로부터 3차 조정회의일의 이틀 전인 토요일 늦은 저녁시간에 ‘잠정합의안이 부결됐다’는 문자가 왔다. 3차 조정회의 분위기는 침통했다. 노조 측은 조합원의 속내를 도저히 알 수 없다며 잠정합의안 부결이라는 결과에 당황했다. 사용자 측은 이미 최선의 양보를 한 상황이라 더는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결국 조정위원들은 “노조 위원장 선거는 나중에 생각하고 현재 조합원들의 정확한 마음부터 읽고 노사 당사자 간 여러 차례 새로이 교섭하라’고 제안하면서 4차 조정회의 일정을 잡았다.

4차 조정회의 날이 밝았고 노조가 불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양측 모두 참석했다. 기나긴 개별 면담과 조정 끝에 ‘임금인상률 2.0%. 타결 격려금 200만원 지급’을 조정안에 담아냈다. 조정안을 수락함에 따라 조정이 성립됐지만 조정위원 및 노사 양측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없었다.

조성사건의 가장 어려운 부분 ‘대리인 패러독스’

이 사건은 조정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인 이른바 ‘대리인 패러독스(Agent Paradox)’를 뼈아프게 시사한다.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이 조합원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안위를 우선할 때 협상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조정위원들이 아무리 명석한 판단을 내려도 당사자들 사이의 진정한 신뢰와 소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모두에게 씁쓸한 뒷맛만 남길 뿐이다. ‘한측만 만족하는 협상보단 양측이 모두 아쉬워하는 결과가 잘된 협상’이라는 명제에 비춰 ‘조정성립’이란 결과물만으로 협상이 잘 마무리됐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미결 상태보다는 결론이 도출돼 한해의 논공행상이 마무리된 그 자체로 ‘조정성립’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단체협상은 제3자의 관여를 최소화하고(어쩌면 대리인들까지도 포함) 다양한 구성원들의 유불리 사항을 최대한 반영해 당사자 간의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다소 늦더라도 제대로 협상하고 타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조정 신청하고 노동위원회에서 임단협을 타결하는 노사문화보다는 시일이 경과되더라도 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타결하는 노사문화가 더 바람직하다는 부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동현 중앙노동위원회 조정과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