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발전 속도에 뒤처진 회계감사 규제

2026-04-29 13:00:01 게재

미국은 시장주도, 영국은 인증 중심 … 국가별 규제 달라

“한국, 혼합 모델 만들어야” … AI 도입 유인 부족은 과제

AI(인공지능)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회계감사 분야에서도 도입이 확산되고 있지만 규제 체계 마련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회계법인들이 AI 도입으로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오히려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보상 구조로 인해 혁신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28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개최한 ‘제2회 AI혁신감사인증포럼’에 발표자로 나온 나현종·정태진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2022년 ChatGPT가 등장하고 2024년 생성형 AI가 확산됐고, 지난해 에이전틱AI가 나왔지만 국제윤리기준위원회(IESBA)의 윤리 코드 개정은 착수부터 발효까지 5년이 소요됐다”며 “AI의 발전속도와 제도의 대응 속도 격차에 대응하는 것이 회계사회와 규제기관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회계감사 분야에서 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감사의 핵심 가치인 ‘책임·독립성·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를 규정하는 윤리 코드 개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영국 금융보고위원회(FRC)는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 관련 감사 가이드라인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지만, 이미 현장에서는 AI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난 뒤였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글로벌 대형 회계법인들은 AI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PwC는 25억달러, EY는 24억달러, 딜로이트는 20억달러, KPMG는 21억달러를 투자했다. 투자비율은 자체 AI 플랫폼 구축을 위한 기술개발에 40%, AI전문가 영입에 25%, 기존 인력의 AI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에 20%, 기술기업과의 제휴에 15%를 각각 배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도 AI에 적극 투자하고 있지만 중소형 법인들은 전문인력 부족과 비용부담, 보안 등이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AI 도입에 맞춰 규제 방식을 조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국제기구에서는 AI 감사 대응을 위해 기준(IAASB), 윤리(IESBA), 정책 허브(IFAC)로 역할을 나눠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IAASB는 감사 기준을 담당하며, 2024년 ‘Technology Position’을 통해 AI 활용과 관련한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아울러 8대 핵심 실행조치를 마련하고, 반기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Catalog’를 통해 실무 지침을 보완하고 있다. 현재는 감사 증거와 관련된 ISA 500 시리즈 개정도 진행 중이다.

나 교수와 정 교수는 “(국제기구들의 대응을 보면) 전통적 기준 제정 방식이 AI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기별 업데이트라는 실험은 의미가 있지만 AI 기술이 월단위로 변화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여전히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기준 제정의 역할과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AI 도입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규제 방식과 대응 속도는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시장 중심 접근을 택하고 있다. 규제기관이 세부적인 사용 기준을 일일이 정하기보다는 민간의 혁신과 기술 발전에 맡기는 방식이다. 회계업계와 기술기업이 협력해 감사 도구를 개발하고, 표준화와 인프라 구축을 통해 시장 자율적으로 확산시키는 구조다.

영국은 인증과 규제를 결합한 방식이 두드러진다. 회계사회와 감독당국이 AI 도구에 대해 일정한 평가와 인증 절차를 마련해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립적인 평가기관을 통해 소프트웨어의 보안성과 정확성 등을 검증하고, 감사 품질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는 구조다. 기술 도입을 허용하되 사전 검증을 통해 리스크를 통제하는 규제 중심 모델이다.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AI 도입 전략을 수립하고, 회계업계와 연계해 교육, 가이드라인, 인프라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나 교수와 정 교수는 “한국은 한국공인회계사회의 회원 장악력이 회원 중심인 호주형에 가깝고, 금융감독원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면 국가 연계의 싱가포르형의 요소도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의 제도적 맥락에 맞는 혼합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은 감사 시간 기반의 보수 체계여서 표준감사시간제도가 AI 효율화 인센티브 구조와 충돌하고, 데이터를 표준화하면 피감기업의 부담이 증가하며, 대형 회계법인과 중소형 회계법인의 이원구조 등 고유의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해외 공인회계사협회들도 대부분 현행 체계 안에서 인증과 가이드라인 교육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AI 도입에 따른 인센티브 구조 자체를 다루는 논의가 거의 부재하다는 게 나 교수와 정 교수의 지적이다. 회계감사의 공공재적 특수성이 AI 혁신 도입을 제약하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회계감사는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지만 투자자와 시장 전체가 혜택을 누리는 대표적인 공공재 성격을 지닌다. 감사 품질 향상을 위한 투자 필요성은 커지지만, 그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와 이익을 얻는 주체가 분리되면서 인센티브 왜곡이 발생한다.

감사 보수가 주로 투입 시간과 인력에 기반해 책정되는 상황에서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보수 감소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교수와 정 교수는 “모든 법인이 AI를 도입하지만 아무도 이익을 보지 못하는 역설적 균형이 발생한다”며 “AI투자가 품질 향상 도구가 아닌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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