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인 건강권, 문턱을 넘어 ‘진료실 안’으로, ‘사람’에게로
재활의학과 교수이자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장으로서 진료 현장을 지키다 보면, 매일 같이 보이지 않는 벽과 마주한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았지만, 정작 엑스레이 촬영대가 너무 높아 검사를 포기하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워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한 장애인을 목격한다. “오래 걸리고 힘들다”는 이유로 장애인 진료를 기피하는 의료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발표한 ‘제1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은 장애인의 의료장벽에 의미 있는 균열을 내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장애인 건강을 독립적인 정책 영역으로 설정하고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 수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장애인 건강 독립적 정책 영역화
이번 계획의 핵심적 의의는 의료접근성의 개념을 시설·장비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진료·검사·운영이라는 서비스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데 있다. 이는 의료진으로서 매우 환영할 만한 변화다. 장애인이 병원에 와서 겪는 불편은 엘리베이터 유무보다 의료진의 이해 부족과 경직된 운영시스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종합계획은 진료 예약부터 접수, 진료와 검사, 사후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접근성을 다루고 있다. 수어 통역 지원, 장애 특성을 고려한 충분한 진료 시간 배정 등 운영시스템 전반을 손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이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경험하게 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러한 변화를 소수의 ‘장애인 건강검진기관’이나 ‘재활병원’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 의료기관으로 확산하려 한다는 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멀리 떨어진 전문 병원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집 앞 내과나 치과에서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는 장애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됨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중증 질환으로의 이환을 막아 국가 전체 의료비 절감에도 기여하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번 종합계획이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의료진과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쌍방향 교육’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장애 인식 개선을 확대해, 지역 의사가 장애인 진료에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전문성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건강 교육도 강화돼야 한다. 자신의 질병을 이해하고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건강 문해력’을 키워 그들이 능동적 건강 주체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능동적 건강 주체로 지원해야
물론 계획이 발표되었다고 해서 현장의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2027년으로 예정된 종합계획 중간평가는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2028년부터 새롭게 수립될 제7차 장애인 정책종합계획, 나아가 제2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의 방향키를 설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애인 건강관리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고도화할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장애인 의료접근성을 위해 고민하는 현장의 의료인으로서 이번 종합계획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애인이 아플 때 고민 없이 집 근처 병원을 찾고, 의사와 눈을 맞추며 편안하게 진료받는 풍경. 이번 제1차 종합계획이 그 당연한 일상을 앞당기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하며, 현장에서도 그 변화의 물결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한다.
임재영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