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더 빠른 반도체는 만들 수 없나
새해 들어 반도체로 온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폭등하면서 메모리 기업들의 이익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전망에 주가가 끝없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성능을 나타내면서 글로벌 AI 기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데 학습과 추론용 데이터센터 수요의 폭발적 증가로 야기된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이 그 원인이다.
국내외 첨단 메모리업체가 각광받는 이유는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생산하는 GPU 연산코어와 메모리 사이의 데이터 이동속도를 높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독점 공급과 수요 폭발 때문이다. 일반적인 D램 메모리보다 데이터를 보내는 전선 수를 대폭 늘려 통신속도를 높인 것이 HBM이다. 물론 HBM을 구성하는 D램 메모리 소자의 속도도 빨라졌는데 컴퓨터의 심장박동과도 같은 클럭 주파수가 올라가는 등의 개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선 수를 늘리는 것도 무한히 계속할 수 없고 클럭 주파수도 계속 올릴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반도체에서 흐르는 전자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진공에 있는 전자에 일정 전압을 가하면 가속도 운동을 한다. 높은 빌딩에서 떨어트린 야구공처럼 점점 속도가 증가한다. 하지만 실제로 야구공을 높은 빌딩에서 떨어트리면 속도가 일정한 값에 도달한 후 더 증가하지 않는다. 공기와 야구공의 마찰력이 속도에 따라 점점 커져서 중력을 상쇄하기 때문에 초당 40m 정도 까지만 속도가 증가한다.
반도체 내부에서 흐르는 전자도 전기장을 걸면 속도가 증가하지만 곧 다른 원자와 충돌하고 다시 가속하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는 전기장이 일정하면 속도도 일정하다. 즉 반도체 내부의 전자의 속도(velocity)는 전기장에 비례한다. 진공에서는 가속도(acceleration)가 전기장에 비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자의 평균속도 높이면 가능할 수도
따라서 전기장의 세기를 증가시키면 전자의 평균속도를 높일 수 있다. 메모리와 연산코어 사이의 전선의 길이를 줄이거나 트랜지스터의 채널 길이를 줄이면 전압이 일정해도 전기장은 증가하므로 평균속도가 는다. 반도체 소자가 미세화 되는 것은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연산능력을 높이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트랜지스터 걸어주는 전압이 일정해도 길이가 짧아지면서 전기장이 증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일정 속도 이상이 되면 전기장에 비례해 속도 증가가 멈추고 증가된 전류에 따른 열발생도 늘어나서 문제가 된다.
전기장이 일정한데 전자를 빨리 움직이려면 속도와 전기장 사이의 비례상수인 ‘이동도(mobility)’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이동도를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전기장에서 가속된 전자가 반도체 안에서 움직이는 평균거리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완벽한 격자상태라면 전자는 아무런 충돌도 하지 않는다. 물질 안에는 수많은 원자와 전자들이 있는데 움직이는 전자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다.
실제 반도체 물질은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어도 절대영도가 아니라면 격자를 이루는 원자가 진동해 완벽한 격자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을 바꾸기 위해서 일부러 넣어주는 불순물이 완벽한 격자를 망가트린다. 그래서 충돌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완벽에 가까운 단결정 격자를 만들면 충돌을 줄일 수는 있다.
이동도를 결정하는 두번째 요인은 주어진 전기장에서 전자가 얼마나 빨리 가속되는가다. 외부에서 전자에 가해주는 전기장이 일정하면 힘이 일정하므로 가속도도 일정하다. 이것이 뉴튼의 운동법칙인데 가해진 힘과 가속도 사이의 비례상수가 질량이다. 질량이 크면 가속도는 작아진다. 전자의 질량은 진공에서는 일정하지만 물질안에서는 ‘유효질량’이라는 다른 값을 갖는다. 양자역학적으로 결정되는 이 값이 작으면 같은 전기장에서도 더 빠르게 가속되어 고속 반도체 소자를 만들 수 있다.
실리콘보다 전자의 유효질량 작은 물질은
실리콘(Si)의 전자의 유효질량은 진공에서 전자질량의 0.26배인데, 갈륨비소(GaAs)는 0.065배로 4배 이상 빠르다. 이런 이유로 갈륨비소를 차세대 반도체로 보고 오래 연구했지만 실리콘 기술이 수백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칩 하나에 집적하게 되면서 오늘날 실리콘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실리콘은 상대적으로 느린 전자의 속도를 소자의 숫자로 극복한 것이다.
전자의 유효질량이 실리콘보다 19배나 작은 안티몬화 인듐(InSb)을 초고집적회로로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 초고속 반도체 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높은 제조비용이나 열적 불안정성 등의 어려움 때문에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