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숫자에 갇힌 소년 사법, ‘엄벌의 역설’ 경계해야

2026-03-06 13:00:03 게재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

과거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공약에 따라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방안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해 왔다. 당시 법무부는 소년 범죄의 흉포화를 근거로 내세웠으나,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의 반대, 교정 시설 과밀화와 예산 문제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다시 이 의제를 국무회의 테이블에 올렸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숙의’를 요청했다.

피해자를 지원하다 보면 가해자의 엄벌을 원하는 분노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가해자 역시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일 때 우리는 복잡한 질문과 마주한다. 세게 처벌한다고 해결될까? 교도소에 수감된 중1 청소년이 성인 범죄자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출소 후 공동체로 복귀한 이들이 초래할 유무형의 비용은 결국 우리 사회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들을 영원히 격리할 수 없다면 타인을 존중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길이다.

또한 처벌 강화가 가져올 파장, 즉 ‘엄벌의 역설’도 경계해야 한다. 처벌이 강화될수록 가해 소년과 부모는 반성 대신 ‘생존’을 위한 회피 전략에 집중한다.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의 진술을 무력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형사재판의 대원칙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는 형량이 무거울수록 법관에게 더욱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게 만든다. 특히 진술 의존도가 높은 성범죄의 경우 증거주의를 내세운 법원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자신의 행동을 직면하고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기 보다 책임 회피를 학습시키는 모순을 초래할 수 있는 셈이다.

과학적·범죄학적 관점에서도 연령 하향은 위험하다. 뇌과학적으로 만 13세는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한창 발달 중인 시기다. 이들에게 성인 수준의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인간 발달 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사회 구조적 실패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다. 실제로 2010년 형사 연령을 낮췄다가 재범률 상승이라는 부작용으로 인해 2년 만에 정책을 환원한 덴마크의 사례나, 형사처벌 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하라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UNCRC)의 권고는 ‘엄벌’이 결코 해답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국가의 진정한 책무는 아동·청소년의 권리에 기반해 범죄 원인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예방하는 방법을 찾고 전문화된 재범 방지 프로그램과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제 숫자가 아닌 구조를 바꾸는 진정한 숙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