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과학자의 시간’을 고려해야 할 이유
늦은 밤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컴퓨터 화면에는 복잡한 계산 결과가 떠 있고 학생들은 그 앞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옆에 둔 채 코드를 다시 돌려본다. 문제 하나를 붙잡고 몇 주, 때로는 몇 달을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과학과 공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밤은 일상의 한 장면이다. 필자 역시 비슷한 밤들을 보냈다.
과학과 공학은 그렇게 사람의 시간을 먹으며 성장하는 분야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때로는 반복적인 계산과 실험의 형태로, 때로는 오랜 고민과 실패의 형태로 쌓여 간다.
이처럼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과학과 공학은 오랫동안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기도 했다.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보다 그 분야 자체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 말이다. 과학이 좋고 공학이 좋아서, 혹은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연구를 계속해 온 사람들이다. 긴 시간의 노력에도 성과가 언제 나타날지 확실하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높은 보상이나 대우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연구를 계속해 온 사람들이다.
과학기술 투자 많지만 우수한 인재 진입 꺼려
이런 분야를 지탱하는 과학자와 공학자의 중요성을 국가 역시 오래전부터 인식해 왔다. 한국은 비교적 일찍부터 과학기술을 국가 발전의 기반으로 삼아 온 나라에 속한다. 전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이 오늘날의 산업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과학기술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정부 역시 오랫동안 과학기술을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연구개발에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이어 왔다. 실제로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4.8%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미국은 약 3%대, 일본은 약 3%대 초반, 독일은 약 3% 수준이며 영국과 프랑스는 약 2% 안팎이다. 중국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2%대 수준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았을 때 한국은 과학기술에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지속해 온 나라에 속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한국은 이처럼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는데 왜 과학공학계는 인재의 흐름을 걱정하고 있는가? 왜 과학과 공학에 우수한 인재들은 진입을 망설이는가? 사회가 풍요로워질수록 젊은이들의 선택지는 훨씬 다양해진다. 과거보다 더 많은 직업이 존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길도 늘어났다. 어떤 직업은 비교적 짧은 시간의 준비로도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긴 시간을 투자하는데 보상과 대우는 특별하지 않은 분야가 자연스럽게 선택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학과 공학 분야에 더 많은 인재가 들어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생각해 볼 문제는 이 분야의 보상과 대우의 구조일 것이다. 과거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던 시절에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비교적 낮은 보상 속에서도 연구를 이어가는 일이 가능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크게 많은 돈을 벌기 어려웠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개인적인 열정과 사명감에 가까운 마음으로 연구를 이어 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 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고 젊은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도 크게 늘어났다. 비교적 짧은 시간의 준비로도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도 적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긴 시간 훈련과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직업이 과거와 같은 보상과 대우 속에 머물러 있다면 우수한 인재들이 다른 분야로 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상과 대우의 문제만으로 이 현상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젊은 세대가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는 그 일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 있는 일로 보이는지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보상구조 재설계 하고 자부심 갖게 해야
결국 과학과 공학에 더 많은 인재가 들어오게 하려면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하다. 이 분야에 걸맞은 보상과 대우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 그리고 과학과 공학이 인류의 발전과 사회의 미래에 기여하는 중요한 직업이라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공유되는 일이다.
과학기술을 통해 성장해 온 나라라면 이제 그 분야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산업과 기술의 성과 역시 누군가의 긴 시간과 반복된 실패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