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이란전쟁과 에너지안보

2026-03-11 13:00:02 게재

미국의 대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모처럼 활기를 맞았던 국내 주식 장이 극심한 변동성에 휩싸이며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에 드리운 이러한 위기감은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지목되어온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한국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 에너지 집약산업의 비중,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에너지의 약 94%를 수입에 의존한다. 게다가 1차 에너지 소비량의 40%에 달하는 석유는 70% 정도를 중동에서 수입할 만큼 공급선이 편중된 구시대적 에너지 체제를 갖고 있다.

이번 중동 전쟁은 우리에게 화석에너지로부터의 탈피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은 이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 뼈저린 교훈이기도 하다. 2021년 초 약 18유로였던 유럽의 가스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인 2022년 8월 340유로까지 치솟아 거의 19배에 달하는 가격폭등과 변동성을 기록했다. 갑작스러운 에너지 위기의 극복을 위해 유럽 정부는 막대한 재정 지출과 GDP 손실, 산업 생산성의 악화를 감내해야 했다.

유럽연합은 그 후 에너지안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리파워 유럽(REPowerEU) 정책 등을 앞세워 미래 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태양광의 신규 설치량이 2021년 23GW에서 2023년 57GW로 급증했고 히트펌프 판매량도 2022년 한해만 300만대에 이를 만큼 급성장했다. 유럽연합은 이처럼 러-우 전쟁으로 맞은 위기를 에너지전환을 최대한 앞당기는 계기로 삼았다.

원칙에 충실한 덴마크의 에너지전환

유럽의 대응 중에 특히 덴마크와 독일의 사례 비교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두 나라 모두 재생에너지 전환의 모범국가지만 전쟁의 영향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독일 경제가 2023년 역성장을 기록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음에 반해 덴마크는 3.8%(2022년), 1.9%(2023년)의 성장세를 유지했다. 왜 이러한 격차가 발생했을까?

우선 일차적인 원인으로 두 국가의 가스자원에 대한 해외 의존도 차이를 꼽을 수 있다. 독일은 당시 브릿지 자원으로 활용한 가스의 수입을 러시아에 55% 이상 의존하던 반면, 덴마크는 활발한 풍력발전과 인근 북해 가스전에 힘입어 수입 의존도를 크게 낮추고 있었다. 화석에너지의 해외 의존도 격차에 따른 에너지안보 위험성의 차이가 두 나라에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그 밖에도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덴마크의 에너지전환이 무엇보다 효율과 절약이라는 반석 위에 한 단계씩 쌓아진 성과물이란 사실이다. 흔히 덴마크 하면 풍력발전을 우선 떠올리지만 실상 덴마크가 에너지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지역난방(District Heating)을 중심으로 한 유연한 집단 에너지 공급 체계와 압도적인 에너지 고효율 체제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개별 난방이 주를 이룬 독일과 달리 덴마크에서는 전체 가구의 약 2/3가 집단 난방 시스템을 통해 열에너지를 공급받고 수도 코펜하겐은 보급률이 98%에 달할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열공급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도시와 산업 전체가 거대한 열 네트워크로 연결된 구조하에서 바이오매스, 쓰레기 소각열, 산업 폐열, 대형 히트펌프, 가스 등 다양한 열원을 언제든 대체 할 수 있는 유연한 운영도 가능하다.

효율에 기반한 전환이 에너지안보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덴마크는 “아끼는 것이 제1의 에너지”라는 기치 아래 효율과 절약을 기반으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덴마크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수준의 단열 기준을 확립한 나라 중 하나이며, 디지털화된 계측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에너지 소비량을 모니터링하며 조절하는 시스템도 운용하고 있다. 아울러 재생에너지와 효율수단 간의 연계성이 잘 설계돼 있어 풍력발전에서 발생하는 잉여전기는 곧바로 거대한 히트펌프나 전기보일러로 저장되어 다른 에너지로 활용된다.

덴마크는 에너지전환의 원칙과 절차, 그리고 철학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로서 특히 AI, 데이터센터 등과 관련한 과대포장된 전력공급 논리에 매몰돼 방향성을 헷갈리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에너지안보가 절실한 지금, 효율과 절약을 기초로 재생에너지 공급과 효율성을 다양하게 연계한 유연한 에너지전환 전략에서 진정한 길을 찾길 바란다.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