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설탕이 던지는 200년 된 질문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물 분자 하나를 내보내며 결합한 이당류다. 그전까지 설탕은 귀족의 빛나는 사치품이었다. 요리사는 당도를 혀로 가늠했고, 상인은 원산지와 정제 정도에 따라 제각각인 품질을 눈으로 쳤다.
사탕수수즙에서 불순물을 걷어내고 수분을 날리면 고순도의 하얀 결정이 남는다. 맛이 표준화되고 계량이 쉬워지고 용해도가 일정해졌다. 하얀 결정은 단지 단맛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물질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근대 식품산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그 문을 누군가는 처음으로 열어야 했다.
그 문을 연 사람이 노버트 릴뢰(Norbert Rillieux)다. 1806년 뉴올리언스에서 백인 농장주 아버지와 흑인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유 유색인이라는 어중간한 신분이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돌아온 그가 개발한 다중 효용 증발기는 증발기 여러 대를 연결해 한 단계에서 나온 열기가 다음 단계를 달구게 했다.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되자 석탄 소비량은 획기적으로 줄었고, 반대로 설탕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증발기에 감압을 걸어 낮은 온도에서 끓이는 방식으로 갈색화도 막았다. 백색 설탕이 탄생한 것이다.
특허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는 이내 환멸을 느꼈다. 자신의 기술은 농장주들의 부를 불리는 데 쓰이는데, 정작 자신은 사회 구성원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흑인노예의 피를 이어받은 발명가가 설계한 기계가 노예제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분노가 아니라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다시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다.
즐거움의 상징에서 건강 위해 대상으로
아이러니는 기술 안에 이미 새겨져 있었다. 다중 효용 증발기는 흑인노예들이 펄펄 끓는 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던 시간을 없앴다. 그러나 대신 그들을 땡볕 아래 사탕수수밭으로 내몰았다. 작업 공간이 공장 안에서 들판으로 이동했을 뿐, 고통의 총량은 줄지 않았다.
설탕값이 폭락하자 잼이 귀족의 식탁에서 노동자의 점심 도시락으로 내려왔다. 잼은 펙틴과 당과 유기산이 어우러진 저장식품이다. 다량의 설탕이 수분과 결합해 미생물이 파고들 틈을 막는다. 빵에 잼을 바르고 손을 탁탁 털면 식사 끝이었다.
덕분에 공장주들은 노동자를 더 오래 부려먹을 수 있었다. 릴뢰가 선물한 저렴한 백색 설탕은 서민의 입을 달콤하게 했지만 그들의 하루를 더 길고 고되게 만들었다. 발명의 수혜자와 발명의 비용을 치른 자는 언제나 달랐다. 기술은 언제나 중립처럼 보이지만 그 열매는 고르게 나뉘지 않는다.
이제 설탕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압박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10여 개 국가가 가당 음료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한때 즐거움의 상징이던 설탕이 이제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으로 분류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논의 중이다. 국회에 발의된 안과 보건의료계 제안을 보면 리터당 300원 수준의 부담금이 거론된다. 250ml 캔이라면 약 75원, 1.5L 페트병이라면 약 450원이 오른다. 10~20% 수준의 인상이다.
제로 음료를 과세대상에서 빼면 단순 증세가 아니라 제품 구성을 저당 중심으로 바꾸는 유인이 된다. 다만 인공감미료가 그 자리를 채울 때 생기는 새로운 논란은 이미 예고되어 있다. 달콤함을 대체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설탕세는 비만과 당뇨가 남길 장기 의료비를 생각하면 유력한 선택지다. 그러나 가격정책 하나로 대사질환을 막을 수는 없다. 영양 교육, 식품표시 강화, 저소득층 지원 같은 비조세 정책과 정교하게 패키지로 묶여야 효과가 난다.
설탕 둘러싼 정치는 여전히 복잡하다
더 큰 위험은 따로 있다. 설탕세가 특정 정권의 상징 정책으로 소비될 경우 다음 정권이 1순위로 폐지할 수 있다. 건강세는 장기적 효과를 지향하지만 정권교체 주기는 짧다. 여야 합의로 법률에 담고, 세수 운용을 독립된 민관 합동 기구에 맡겨야만 정책이 살아남는다. 건강 정책을 이념 대결의 볼모로 삼는 순간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시민에게 돌아온다. 설탕을 둘러싼 정치도, 릴뢰의 시대만큼이나 복잡하다.
릴뢰는 자신이 만든 하얀 결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고 있었을까. 그가 프랑스로 떠나던 날 설탕은 이미 기술이 아닌 질문이 되어 있었다. 달콤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편리함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200년이 지났어도 그 질문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릴뢰의 백색 설탕은 아직도 인류에게 할 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