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민심으로 확인한 감축목표 강화, 응답하라 국회 기후특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탄소중립기본법 공론화가 마무리되었다. 성별 지역별 연령별로 무작위 선정된 300명의 시민대표단이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평균 이상으로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감축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번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번 공론화는 다른 경우와 달리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미래세대의 의견을 어떻게 시민대표단의 구성에 반영할지, 그리고 시민대표단이 숙의할 의제에 결정문의 내용을 어떻게 구체화할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먼저 시민대표단의 구성 측면에서 기후위기의 직접 당사자인 미래세대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의 가장 큰 이유가 현행 법률에 장기 감축목표가 없는 것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공론화위원회가 시민대표단의 구성을 만 15세 이상으로 확대하고, 직접 참여가 어려운 0세부터 14세까지의 인구 비중을 추가로 반영한 점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또한 성인 중심의 시민대표단과 별개로 40명의 미래세대 대표단을 운영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감축목표, 전세계 평균 이상 돼야’ 75%
의제 설정에 있어서도 헌재의 결정 취지를 담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사실 헌재 결정에 대해 국회가 공론화를 진행한다는 것이 모두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공론조사 형태의 공론화는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여러 도구 중의 하나일 뿐이며, 그 결과가 헌재 결정과 정반대로 나오게 되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재가 국회에 내준 숙제 범위에서 숙의를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헌재의 출제 의도는 명확했다. 결정문에서는 감축목표를 정할 때 우리나라의 책임과 역량을 고려해야 하고, 감축경로에 있어서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감축목표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공론화 설계 과정에서 감축목표와 감축경로, 이행방안 등을 핵심의제로 설정하고 설문 문항을 설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 이번 공론화의 결과는 어떨까? 무려 75%에 달하는 시민들이 우리나라의 감축목표가 ‘전세계 평균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여기서 ‘전세계 평균’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1.5℃ 감축경로(2035년 기준 2018년 대비 61% 감축)를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2035년 감축목표가 최소 53%에서 최대 61%로 설정되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고무적이다. 정부가 최대치로 설정한 목표가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70대 이상 연령 패널의 경우 ‘전세계 평균 이상’에 대한 선호도가 42%를 기록해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기성세대는 미래세대보다 기후위기 대응에 보수적이고 당장의 비용부담에 더욱 민감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를 정반대로 뒤집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감축경로에 대해서는 ‘아래로 오목한 경로’여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지금부터 감축속도를 높여서 미래세대에 전가되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말한다. 숙의 진행 이전에 해당 경로에 대한 선호는 50% 수준이었으나 학습과 토론을 통해 마지막에는 78%까지 높아졌다. 현실적 부담으로 인해 지금부터 감축 속도를 높이는 방향에 대한 시민들의 선호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도 보기 좋게 깨졌다.
이에 반해 감축부담을 미래에 떠넘기는 ‘위로 볼록한 경로’에 대한 선호도는 2.5%에 불과했다. 그동안 국민의힘 의원들과 산업계에서는 ‘비용부담’과 ‘준비부족’을 이유로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강화를 계속 미루어왔는데, 시민들의 압도적 다수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더 미룰 일 아냐
이번 공론화는 우리나라의 감축목표를 빠르게 강화해야 한다는 민심을 명확하게 확인한 첫 사례다. 이에 따라 국회는 조속히 법률 개정을 진행해야 하지만, 지금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기후특위의 임기가 올해 5월까지이고, 6월 지방선거 때문에 이 이슈가 정치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이제 국회의 신속한 결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