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금리 한숨 돌리자 증시도 반등

2026-05-26 13:00:03 게재

유가 진정에 인플레 우려 일부 완화 … “고금리 압박 끝난 건 아니다” 경계도

미국 달러화 지폐.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금융시장을 짓눌렀던 국채금리 상승 압력이 일부 완화되고 있다. 중동전쟁 이후 유가 급등과 물가 재상승 우려로 주요국 금리가 치솟았지만, 미국과 이란의 협상 기대가 커지며 국제유가가 하락하자 채권시장이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영국에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주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가 지난 주 4.9%로 내려왔다. 2023년 12월 이후 가장 큰 주간 하락폭이다.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도 5.56%로 떨어졌다.

영국 국채금리 하락에는 물가와 경기 지표가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4월 물가상승률은 시장 예상보다 낮은 2.8%였고, 5월 기업활동 지표는 13개월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FT는 현재 3.75%인 영국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0.25%씩 두 차례 오를 것으로 시장이 예상한다고 전했다. 주초에는 두세 차례 인상이 예상됐지만, 물가와 경기 지표가 약하게 나오면서 긴축 전망이 낮아졌다.

정치불안 완화도 채권시장에 안도감을 줬다. 영국 노동당 대표 경선의 유력 주자인 앤디 번햄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이 재정준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새 총리 취임 뒤 국채 발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누그러졌다. 중동 전쟁으로 영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한때 5.2% 가까이 오른 만큼, 재정준칙 논란은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었다.

영국의 움직임은 세계 채권시장 전반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글로벌 국채시장은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을 가장 큰 변수로 보고 있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 유가가 높은 수준에 머물고, 이는 물가 상승을 다시 자극한다.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미루거나 추가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이란과의 합의가 가까워졌다고 밝힌 뒤 브렌트유 선물은 약 7% 하락해 배럴당 93.42달러로 내려갔다. 이에 아시아와 유럽 증시는 동반 상승했다. 닛케이지수는 약 3% 올라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고, 미국 나스닥100 선물도 1.4% 상승했다. 유가 하락이 물가 압력과 추가 긴축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

미국과 독일, 일본 국채금리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WSJ는 독일 10년물 국채금리가 미국·이란 협상 기대와 유가 하락 영향으로 2.987%까지 내려갔다고 전했다. 이후 하락폭은 9bp(0.09%) 이상으로 커지며 6주 만의 최저 수준인 2.941%를 기록했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도 유가 하락과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지연 기대 속에 2.690%로 내려갔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전략가들은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견조하고 금융 여건도 더 완화적이어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유로존 국채보다 더 강한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유로존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더 취약해 유럽중앙은행이 시장 예상만큼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증시가 국채금리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투자자는 미래 이익에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다. 특히 미래 성장 기대가 주가에 많이 반영된 업종은 금리상승에 취약하다. 반대로 국채금리가 내려가면 성장주와 위험자산에 다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

WSJ는 협상이 실제 타결되더라도 호르무즈해협 병목이 바로 풀리기 어렵고, 운송업체들도 장기간의 안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유가가 다시 오르거나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 물가 불안은 곧바로 되살아날 수 있다.

결국 이번 국채금리 하락은 시장이 한숨을 돌릴 시간을 벌어준 성격이 강하다. 전 세계 증시는 AI 투자 열기와 기업실적 기대에 힘입어 버티고 있지만, 밑바탕에는 여전히 높은 금리와 에너지 가격 부담이 남아 있다. 지금 시장의 핵심 변수는 기업 실적만이 아니라, 국채금리가 어디에서 멈추느냐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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