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변수에 달아오른 구리시장
이달 30일 상무부 관세 권고안 재검토 앞두고 미국내 ‘차익거래’ 급등
블룸버그 “미 수입 급증·공급 부족 겹쳐 … AI 투자 확대도 가격 견인”
미국의 구리 수입관세 부과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면서 국제 구리 가격이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내 가격이 국제 시세를 크게 웃돌면서 전 세계 구리 물량이 미국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올해 말까지 추가 상승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27년 15% 관세 부과 전 확보하라” =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1일 구리 가격은 톤당 1만3819달러를 기록하며 5월 중순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 구리 가격도 파운드당 6.45달러까지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시장의 관심은 이달 30일로 예정된 미국 상무부의 구리 관세 권고안에 쏠리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정제구리(가장 많이 거래되는 구리 형태)에 대해 즉각적인 관세 부과 대신 2027년부터 15% 관세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권고했지만 이달 말 해당 방침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관세 우려가 다시 부각되면서 미국내 구리 가격은 국제 가격 대비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트레이더들은 구리를 미국으로 대거 운송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미국의 월간 구리 수입량이 15만~20만톤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구리 시장을 뒤흔들었던 이른바 ‘관세 차익거래’가 재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리 생산업체와 트레이더들이 미국으로 물량을 보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비싼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트라피구라, 2013년 이후 최대 규모 구리 인출 = 미국 가격만 유독 높은 이유는 관세 우려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정제구리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7년부터 15% 관세가 부과된다면 현재 1만3000달러짜리 구리는 1만4950달러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미국내 제조업체와 소비자들은 관세 시행 전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트레이더들은 이를 노려 미국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선제적 재고확보 경쟁이 미국 구리 가격을 세계 시장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최대 원자재 트레이더 중 하나인 트라피구라가 최근 런던금속거래소 창고에서 수억 달러 규모의 구리를 인출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미국내 높은 가격을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한다. 해당 인출 규모는 2013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전해졌다.
미국으로 구리가 몰리면서 세계시장의 수급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미국 이외 지역에 공급될 물량이 줄어들면서 유럽과 아시아 시장의 재고감소 압력이 커지고 있다.
수급 여건도 가격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비축 확대와 함께 광산 생산량이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졌다. 미국외 지역의 구리 시장은 이미 공급 부족 상태에 진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골드만삭스, 구리가격 전망 10% 상향 = 여기에 인공지능(AI) 산업 확대가 새로운 수요 요인으로 부상했다. 데이터센터, 전력망, 반도체 설비 투자 확대가 예상되면서 AI 관련 투자 열기가 구리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구리는 산업 전반에 사용되기 때문에 구리 가격이 세계경제 전망을 반영하는 지표로도 평가된다.
블룸버그는 “최근 미국과 이란이 휴전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금속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휴전이 성사되면 원유 공급 정상화와 물류 안정, 글로벌 경기 침체 완화가 기대된다.
이는 기업들의 투자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망, 제조업 설비 투자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하며 결과적으로 구리 수요 역시 늘어날 것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 같은 수급 환경을 반영해 올해 구리 가격 전망치를 10% 이상 상향(톤당 1만2465달러 → 1만3735달러)했다.
블룸버그는 “미국 관세 정책과 AI 수요 확대, 광산 공급 부족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구리 시장이 다시 강한 상승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정부가 2027년 관세 도입을 확정할 경우 올해 하반기 중 미국으로의 구리 유입이 가속화되면서 런던금속거래소 재고 감소와 국제 가격 상승 압력이 동시에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