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이용 방식 바꾸면 기후·생태·경제 세토끼 잡아

2026-06-15 13:00:06 게재

생물다양성 훼손되면 국가 신용등급 최대 6단계 강등 … ‘환경 대 개발’ 낡은 이분법 허물어져

생물다양성 보전과 경제 성장, 더 이상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환경을 지키려면 개발을 포기해야 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환경을 희생해야 한다’는 통념은 낡은 이분법이 된 지 오래다. 자연에 투자하지 않으면 생산성이 줄고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며, 반대로 토지 이용을 최적화하면 기후·생태·경제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토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상승효과가 달라진다. 사진은 러시아의 한 숲길 위에 설치된 전력망.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1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논문 ‘생물다양성, 기후완화, 순경제가치를 위한 경관 효율 프런티어’에 따르면, 토지 이용 방식을 최적화하면 △생물다양성 보전 △온실가스 감축·흡수(기후 완화) △농업 소득 등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과 개발이 서로 상충한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다.

△미국 미네소타대·스탠퍼드대 △세계은행 △세계야생생물기금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146개국의 공간 생물물리 자료와 경제 자료를 통합하고 최적화 기법을 적용해 각국이 토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자연 서식지 보전·복원 △농경지 △축산 방목지 △임업 용지 등 4가지 토지 이용 유형과 13가지 세부 관리 옵션을 비교해 각 국가에서 이론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적 조합을 도출하는 ‘지속가능 경관 효율 프런티어’를 국가별로 산출했다.

그 결과, 146개국 전체를 합산할 경우 생물다양성이나 순경제가치를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토지 기반 온실가스 감축·흡수 효과를 약 23% 늘릴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다. 탄소 저장량과 메탄 배출 감소를 합쳐 최대 1268기가톤(Gt)의 이산화탄소 환산량(CO₂e) 달성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약 4년 치, 또는 농업·임업·토지 이용 분야 배출량 약 18년 치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생물다양성이나 온실가스 감축·흡수 효과를 줄이지 않으면서 농업·축산·임업 분야 순경제 가치를 연간 83% 높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숲을 지키거나 토지를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면 △탄소 흡수 △수질 개선 △생물다양성 유지 등 사회 전체가 혜택을 누리지만 정작 그 땅을 가진 토지 소유자에게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 입장에서는 숲을 베고 농사를 짓는 편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이 간극을 메우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분석도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렵다.

논문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한 정책 사례로 코스타리카 중국 미국을 꼽았다. 코스타리카는 나무를 베지 않고 숲을 보전하는 토지 소유자에게 정부가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PES)를 운영해 산림 면적을 실질적으로 늘렸다. 중국은 가파른 경사지의 농경지를 풀밭으로 되돌리면 보상금을 지급해 홍수와 토사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농민 빈곤 완화에도 기여했다. 미국의 보전유보프로그램(CRP)은 농민이 일정 기간 농경지에 농사를 짓지 않고 식생을 유지하면 정부가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질과 토양을 개선했다.

생물다양성 보전과 경제 성장이 상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금융 측면에서도 확인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학&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의 논문 ‘생물다양성 손실은 국가의 미래 신용도를 떨어뜨릴 것이다’에 따르면, 생물다양성 훼손과 생태계서비스 손실이 세계 최대 자산군인 국가 채무 신용도를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신용평가 체계가 이러한 자연 관련 위험을 반영하지 않아 최대 83조달러에 달하는 금융자산이 잘못 평가된다는 분석이다.

영국 서섹스대·케임브리지대·런던대학교 SOAS, 미국 예일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생태계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는 모델(GTAP-InVEST)과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방식(S&P 글로벌 신용평가)을 결합해 분석했다. 또한 △열대 목재 △해양 어업 △야생 화분 매개 서비스 등 3가지 생태계 서비스 손실이 △23개국의 국내총생산(GDP) △국가 신용등급 △채무 불이행 확률 △차입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시나리오별로 추정했다.

시나리오는 2가지가 적용됐다. △현 속도로 자연자본이 계속 감소하는 ‘현행 추세(BAU-ES)’ 시나리오 △야생 화분 매개 서비스 90% 감소·해양 어업 어획량 90% 감소·열대 우림의 88%가 초원이나 관목지로 전환되는 ‘생태계 부분 붕괴(PEC)’ 시나리오 등이다. PEC 시나리오는 전세계 GDP 손실이 연간 2조달러에 달하는 극단적 위험 상황을 상정했다. 이는 화분 매개 곤충 연구나 해양 어업 역사에서 실제 관찰된 붕괴 사례와 부합하는 수준이다.

분석 결과, BAU-ES 시나리오 아래서도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인도·중국은 신용등급이 최소 1단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PEC 시나리오에서는 말레이시아·중국·인도·방글라데시가 4단계 이상 강등될 것으로 나타났다. GDP 손실 규모 면에서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중간 수준이었지만 신용등급 강등 폭은 각각 5.5등급, 6.3등급으로 가장 컸다. 신용등급은 소득 수준에 따라 구간이 나뉘는데, 두 나라가 그 경계선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GDP가 조금만 줄어도 경계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등급이 한꺼번에 여러 단계가 내려가는 구조다.

연간 추가 이자 부담도 막대했다. PEC 시나리오에서 △중국은 연간 700억달러 △인도는 490억달러의 이자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23개국 전체를 합산하면 연간 162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가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합의한 연간 생물다양성 재원 조성 목표(2000억달러)의 8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인도 시민 1명 기준으로는 자연 손실로 인한 추가 이자 부담이 가처분 소득의 2.4%에 해당한다.

논문에서는 “신용평가 기관들은 자연 관련 위험을 평가 방법론에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며 “지금 자연에 투자하는 쪽과 나중에 줄어든 재정 여력과 높아진 이자 부담으로 대가를 치르는 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생태계서비스지불제 =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 혜택을 받는 수혜자가 그 서비스를 보전·유지하는 공급자에게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는 환경경제 방식이다. 과소평가되던 생태계 서비스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보전 행위에 특전을 제공한다.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 2022년 12월 캐나다에서 열린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합의문이다. 핵심 목표로 ‘30×30(2030년까지 전세계 육지와 해양의 각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관리)’를 내세웠다. 생물다양성 크레디트 시장 육성 등이 후속 과제로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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