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 국가부채·AI 거품 위험 경고
공공부채 GDP와 맞먹어
헤지펀드 영향력 위험도 커져
국제결제은행(BIS)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난 공공부채와 인공지능(AI) 투자 과열, 금융시장 취약성이 동시에 맞물리며 세계경제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재정 건전성과 물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이터통신 2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의 협의체인 BIS는 이날 공개한 연례경제보고서에서 취약해진 재정 여건과 반복되는 공급 충격, 고물가 재발 가능성이 세계경제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BIS 사무총장은 “정책들이 세계경제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지 않도록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궁극적인 성공은 건전한 재정과 금융 기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BIS가 가장 긴급한 위험으로 지목한 것은 급증한 공공부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공공부채는 2025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4%에 육박했으며, 2029년에는 100%에 이를 전망이다.
문제는 국채시장에서 대규모 차입을 활용하는 헤지펀드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졌다는 점이다. 헤지펀드와 비은행 금융기관이 국채 거래의 주요 축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투자자들까지 위험을 과소평가하면, 작은 충격에도 국채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BIS는 분석했다. 국채 가격 하락으로 손실이 커진 헤지펀드가 자산을 급히 처분할 경우 시장 불안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크 스메츠 BIS 통화경제국장 대행은 이 구조에서는 국채 가격이 과거보다 더 자주, 더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그 충격이 금리 상승과 자금 조달 여건 악화로 빠르게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를 지탱해온 AI 투자 열풍도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BIS는 세계 5대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이 2025년부터 2026년까지 AI 관련 설비투자에 1조달러 이상을 쏟아부을 것으로 추산했다. 투자 규모가 이들 기업의 이익과 잉여현금흐름 증가 속도를 앞지르면서 일부 기업은 채권 발행과 복잡한 자금 조달 구조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BIS는 AI가 생산성 향상 기대를 높이고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왔지만, 공급망 병목과 기업 간 경쟁이 격화할 경우 과거 기술 투자 열풍 때처럼 과잉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 열기가 급격히 식으면 AI 공급망에 얽힌 기업의 자금 사정이 악화하고, 그 충격이 회사채 등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이 고용과 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다만 AI가 생산성과 물가, 고용에 미칠 영향이 아직 불분명한 만큼 중앙은행이 대응 방향을 미리 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BIS는 봤다.
물가 위험도 가라앉지 않았다. BIS는 공급 차질이 반복되면 가계와 기업 사이에서 고물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굳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휴전과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은 극단적인 유가 급등 가능성을 낮춘 “좋은 소식”이지만, 국제 원유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BIS는 각국 정책 당국에 물가 안정을 우선하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한편,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구조 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재정·통화·금융정책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데 코스 사무총장은 “정책 당국은 지금 행동해야 한다”며 “대응을 늦출수록 필요한 조정의 비용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