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빛으로 연결하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데이터센터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계산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데이터를 전송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수만개의 GPU 코어가 일을 하려면 코어와 코어, 기계와 기계 사이에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빠르게 오가야 한다. 지금까지 이 일을 맡아온 구리전선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신호가 약해지고 전기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한계에 다다랐다. 이때 다시 주목받는 것이 전기가 아니라 빛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 바로 포토닉스 기술이다.
빛으로 정보를 전하려는 시도는 오래되었다. 1880년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햇빛에 목소리를 실어 보내는 ‘광선전화’를 선보였다. 빛 통신이 본격화된 것은 1966년 찰스 카오(Charles Kao)가 즉 광섬유에 빛을 가둬서 멀리까지 보낼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다. 그는 이 공로로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70년 미국 코닝사가 실제로 쓸 만한 광섬유를 만들면서 도시와 도시가 빛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반도체 칩과 칩 사이의 짧은 거리는 여전히 구리 담당이었다.
0과 1 신호가 빛을 실어나르는 방식
칩끼리 빛으로 연결하려면 먼저 반도체가 빛을 잘 다뤄야 한다. 하지만 반도체에도 빛과 친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갈륨비소나 인듐인 같은 반도체는 전기를 넣으면 빛을 잘 내놓기 때문에 LED나 레이저를 만드는 데 쓰인다. 반면 컴퓨터 칩의 주재료인 실리콘은 빛을 내는 솜씨가 영 신통치 않다. 전기를 넣어도 빛 대신 열만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빛을 ‘받아들이는’ 데는 능해서 햇빛을 흡수해 전기를 만드는 태양전지가 실리콘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광통신에 쓰는 적외선만큼은 실리콘이 흡수도 하지 않고 그냥 통과시킨다. 빛을 내지도, 삼키지도 않고 말갛게 비춰 보내는 이 성질이야말로 빛이 손실 없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만들기에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발상을 바꾼다. 실리콘에는 빛이 지나는 통로와 신호를 켜고 끄는 스위치만 맡기고, 빛을 직접 만들고 받아내는 일은 빛과 친한 다른 재료에 맡기는 것이다.
칩 위를 흐르는 빛과 0과 1로 된 신호는 어떻게 빛에 실어 보낼까. 빛은 실리콘이 못 만드니, 빛을 잘 내는 인듐인 같은 재료로 만든 작은 레이저를 칩에 붙여 항상 켜진 손전등처럼 일정한 빛을 흘려보낸다. 그 빛이 지나는 길목에 ‘변조기’라는 장치를 두는데, 여기에 전기신호를 넣으면 빛이 그 신호에 맞춰 모르스부호처럼 켜졌다 꺼진다. 전기로 쓴 정보가 빛의 깜빡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를 실은 빛은 칩위에 실리콘으로 만든 통로와 광섬유를 타고 목적지에 가면, 이번에는 적외선을 잘 흡수하는 게르마늄이 그 빛을 받아 다시 전기신호로 되돌린다. 실리콘이 그냥 통과시키는 빛을 게르마늄이 받아내는 분업인 것이다. 이런 길을 처음 고안한 사람이 ‘실리콘 포토닉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리처드 소레프(Richard Soref)이고, 2005년 인텔 등이 1초에 100억번 깜빡이는 변조기를 만들어 가능성을 증명했다. 빛을 만들고, 흐르게 하고, 켜고 끄고, 받아내는 부품을 손톱만한 칩 하나에 모두 담은 것이다.
이런 광송수신기는 1초에 1000억 비트로 시작해 이제 1조6000억 비트를 주고받는 제품까지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빛을 쓴다고 해서 전력 걱정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빛을 만들고 받아내는 부품을 칩에서 멀찍이 떨어진 회로판 가장자리에 따로 꽂아 썼는데, 칩에서 그 자리까지 전기신호를 끌고 가는 데에만도 적지 않은 전력이 든다. AI칩 하나에 딸린 이 부품이 200와트 가까이 먹어서 100만개 규모로 늘리면 정보를 주고받는 데만 중형발전소 한기에 맞먹는 약 180메가와트가 들 정도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빛을 다루는 부품을 아예 프로세서 바로 옆에 붙여 전기신호가 오가는 거리를 줄이는 방식이다. 2025년 엔비디아는 이렇게 광 부품과 통신용 칩을 한 몸으로 합친 장비를 공개하며 종전처럼 따로 꽂아 쓰던 방식보다 전력을 약 1/3로 줄였다고 밝혔다. 먼 거리를 잇는 일은 진작 빛에 맡겼고, 이제는 그 빛을 만들고 받아내는 길목까지 바짝 줄여 전력을 아끼는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실리콘 포토닉스, 전기소자인 동시 빛소자
태양전지가 빛을 전기로 바꾸는 가장 단순한 반도체라면 실리콘 포토닉스는 전기와 빛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반도체다. 흥미롭게도 둘은 결국 한자리에서 만난다. 거대한 AI를 돌리는 데 필요한 전기를 태양전지가 만들고그 AI칩들 사이를 빛이 잇는 그림이다. 머지않아 칩과 칩을 넘어 칩 ‘속’의 가느다란 배선까지 구리가 빛으로 바뀌는 날, 우리는 반도체가 전기소자인 동시에 빛소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