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허 은 이온어스 대표
모두 “안 된다” 했지만, 없던 시장 열고 세계로
이동형 ESS로 디젤발전기 대체부터 에너지 운송까지 … 배터리부터 차량까지 직접 만들어 고객 맞춤 대응
“볼보펜타와 함께 국제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공략하게 됐습니다. 건설기계나 중장비가 디젤에서 전기로 전환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현장 전력 공급형 이동형 ESS 시장이 커지고 있어요. 미래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창업을 하게 됐죠.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안 된다고 했어요.”
22일 경기도 수원 연구소에서 만난 허 은 이온어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2020년 문을 연 이온어스는 이동형 ESS 대표 기업이다. 핵심 제품인 ‘인디고(indego)’는 차량 탑재형부터 거치형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동형 ESS다. 디젤 발전기를 대체해 건설현장·행사·항만 등 전기 공급이 어려운 곳에 청정전력을 공급한다. 국내 특허 32건, 미국 특허 3건을 보유 중이며 특허 가치만 약 215억원이다. 미국·일본·인도네시아·유럽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2028년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도 목표다.
“기존 ESS 시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어요. 한국전력 등 전력회사나 대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상업·산업용(C&I)과 단독주택 태양광 연계형 가정용(레지덴셜) 등이죠. 하지만 저는 이들 영역 외에도 새로운 시장이 충분히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디젤 발전기 대체시장이죠. 소음이나 매연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온실가스 배출 저감 효과까지 누릴 수 있으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동형 ESS 정의조차 없어, 맨땅에 헤딩
하지만 틈새시장을 공략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처음 부딪힌 난관은 이동형 ESS에 대한 정의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ESS인지 발전기인지 파워뱅크(캠핑 등에서 쓰는 이동식 배터리)인지 분류 자체가 없었다.
“4년간 산업용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2건 등을 통해 법령 정비와 KC 안전인증 체계까지 새로 만들었습니다. 법령 정비가 끝났다는 건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최근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기껏 힘겹게 일군 시장에 무임승차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련만, 허 대표는 오히려 반기는 모습이었다.
“저는 이 시장의 미래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후발 기업들이 들어온다고 해서 저희 몫이 줄어드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시장이 더 빨리 커지는 거죠.”
허 대표는 후발업체들이 많아져도 기술력으로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배터리팩 설계부터 전력변환장치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개발·제조합니다. 각 부품을 모두 모듈화(레고 블록처럼 조립·분리가 가능한 구조)해 놨기 때문에 고객이 어떤 용도의 제품을 원하든 즉시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게다가 이동형 ESS는 도로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차량 등록도 해야 하고 자동차관리법도 적용 받습니다. 일반 ESS 회사들은 배터리·전기 기술만 알면 되지만 저희는 차량 기술까지 내재화했어요. 이런 부분을 갖고 있는 곳은 전세계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이온어스의 사업 모델도 기존 ESS 업계와 다르다. 일반 ESS는 전력을 킬로와트시(kWh) 단위로 생산·판매하는 전력거래 방식이지만, 이온어스는 장비를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 대여(렌털) 개념의 에너지 서비스 모델이다.
“저희는 하루 혹은 한달 사용료를 받는 등의 구독 서비스에 가깝습니다. 기존 ESS처럼 kWh로 따지는 게 아니에요. 에너지를 서비스로 파는 거죠.”
경제성도 충분하다. 인디고를 1년 50일 운영한다고 했을 때 약 1억원 매출을 달성하고 2년 안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허 대표의 설명이다. 디젤 발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다.
전동화 가속화할수록 활용 범위 ‘무궁무진’
허 대표는 궁극적으로 이동형 ESS로 전기가 남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직접 전력을 옮기는 ‘에너지 운송’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전기는 빛의 속도로 전달되지만 송전선로 구축에는 장기간의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 이동형 ESS는 전력이 남는 곳에서 충전해 필요한 곳으로 직접 옮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새만금에서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기가 넘치는데 수도권은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팹 등으로 전기가 턱없이 부족해요. 송전선로가 완성되기까지 약 10년의 공백을 이동형 ESS로 메울 수 있습니다. 이동형 ESS를 철도 화물칸에 실어 나르는 거죠. 모든 길을 전력망으로 만드는 겁니다. 이미 현실화하고 있어요.”
이 개념은 전력망이 취약한 개발도상국 시장에서도 통한다. 아프리카 등은 송전망을 새로 깔지 않고 마을 단위 마이크로그리드(소규모 독립 전력망)로 직접 전환하는 추세다. 중국이 신용카드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모바일 결제로 넘어간 것처럼, 전력 기반시설이 취약한 지역은 송전망 단계를 건너뛰고 이동형 ESS 기반의 마이크로그리드로 직접 이행할 수 있다는 게 허 대표의 판단이다.
더욱이 이동형 ESS의 활용 범위는 이미 예상 밖으로 넓어지고 있다. 태양광 패널 재활용 업체인 원광에스엔티는 이온어스의 이동형 ESS를 탑재한 ‘모바일 팩토리’를 도입했다. 이른바 태양광 발전소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이동식 재활용 공장인 셈이다. 태양광 발전소 현장에서 직접 패널을 파쇄·분리해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송비 절감 효과가 뛰어나다. 의료 폐기물 처리 업계에서도 비슷한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전기가 없는 오프사이트 현장에서 작업해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형 ESS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수요가 터지면서 실적도 빠르게 쌓이고 있다.
“시장은 조금씩 열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다들 안 된다고 했지만 전동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저희 모델이 차근차근 자리를 잡을 겁니다. 전세계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수원=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