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 제공 기업들
노미보사이 ‘안전’, 쿠보타 ‘식량과 물’, 고마쓰 ‘건설과 자원 개발’… 사회 필수 영역 뒷받침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Invisible Infrastructure)’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있다. 사업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사회의 핵심 인프라를 지탱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AI와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해 단순한 제품 제조업체에서 고부가가치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며 새로운 장기 성장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노미보사이(能美防災)의 진화
지진, 쓰나미, 태풍, 집중호우가 잦은 일본에서는 방재와 리질리언스(Resilience)가 사회와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인식된다. 최근 방재산업은 단순히 ‘재해를 예방한다’는 개념을 넘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난 발생 이후 신속하게 복구하는 회복탄력성 중심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노미보사이는 방재·방화 설비와 관련 시스템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합 방재 솔루션 기업이다.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종합 방재 시스템을 제공하며, 일본 방재 기술의 발전을 선도하고 사회의 안전과 안심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업의 핵심은 화재감지설비, 소화설비, 유지·점검 서비스로 구성된다. 주력 사업인 화재감지설비 부문은 수주액과 수주잔고, 매출,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체 성장을 이끌었다. 소화설비 부문도 플랜트 관련 수요 증가에 힘입어 매출과 이익이 모두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약 30% 늘어났다. 유지·점검 부문 역시 법정 소방설비 정기점검과 기존 고객의 설비 보수 및 리뉴얼 공사 확대에 힘입어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성장 전략은 비교적 명확하다. 첫째, 기존 사업의 수익성과 이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영자원의 배분을 최적화하고 인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한편, 디지털 전환(DX)을 통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둘째,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방재 관련 분야와 인접 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M&A를 추진해 사업 기반을 넓히고 공급망을 강화한다. 셋째, 신사업을 발굴하고 이를 새로운 성장 축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피소 개설·운영을 지원하는 앱 ‘N-HOPS’로, 지방자치단체와의 실증 실험을 거쳐 2026년 5월 정식 출시됐다. 또한 클라우드 기반 방재 지원 시스템인 ‘TASKis’는 현재 본격적인 사업 확대 단계에 들어섰다. 도입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신규 서비스가 기존 핵심 사업의 성장까지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노미보사이는 견조한 건설시장과 방재 투자 확대에 힘입어 수주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중장기 비전 2028’에서 제시한 핵심 목표인 영업이익률 12% 이상과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을 조기에 달성하며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회사는 향후 3년간 관련 시장의 확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단순한 매출 규모의 확대를 넘어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스마트 농업으로, 쿠보타의 디지털 전환
쿠보타는 ‘식량·물·환경’처럼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분야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기업이념으로 삼고 있다. 농업기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농업을 비롯해 인프라, 물·환경, 엔진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종합 산업기계 기업이다. 전 세계 150개국 이상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해외 매출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 농업 현장에 필요한 농업기계 부문은 단순한 ‘일본의 농기계 회사’를 넘어 세계적인 농기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가별 농업 환경과 사용 방식에 맞춰 제품을 현지화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으며, 축적된 기술력과 농업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 농업인의 신뢰를 얻고 있다.
물·인프라 사업은 상하수도관을 비롯해 물을 운반하고 정화하며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각종 설비와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다. 폐기물 처리와 수질 관리 등 환경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왔다.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의 기반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쿠보타가 종합 인프라 기업으로 성장해 온 방향성을 보여준다.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도 적극 확대하고 있다. 주요 분야는 전사적인 AI 기술 도입, 수소 엔진 등 차세대 파워트레인, 스마트 물·환경 인프라 기술이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향후 3년간 ‘Kubota AI Academy’를 통해 임직원 5만2000명을 대상으로 AI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회사는 자사의 미래상을 ‘생명을 지탱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규정하고, ‘농기계×ICT로 일본 농업에 생산성 혁명을’이라는 방향 아래 스마트 농업 솔루션 개발을 본격화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농작업 부담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여 농업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고정밀 GPS와 자동운전 기술을 활용하면 한 명의 작업자가 유인 트랙터와 무인 트랙터를 동시에 협조 운행할 수 있다. 이는 작업 효율을 크게 높이는 동시에 쿠보타가 구상하는 미래 농업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농업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하는 KSAS(쿠보타 스마트 농업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쿠보타의 최근 실적은 회복세가 뚜렷하다. 2026년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7% 증가한 8100억엔을 기록했다. 기계 부문과 물·환경 부문이 모두 성장하며 실적 개선을 뒷받침했다. 글로벌 농기계 시장의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가격 전략과 비용 개선을 통해 수익성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고마쓰의 스마트 건설 전략
고마쓰(Komatsu)는 불도저와 유압 굴착기, 휠로더 등 각종 건설 현장에서 활용되는 중장비를 제조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이다. 고마쓰의 강점은 뛰어난 품질과 탄탄한 애프터서비스(A/S) 체계,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서의 높은 경쟁력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현지 수요에 맞춘 제품 개발과 오랜 기간 구축해 온 판매·서비스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높은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또 다른 경쟁력은 거대한 애프터마켓에 있다. 건설기계는 판매 이후에도 정기적인 점검과 유지보수, 부품 교체가 필수적이다. 고마쓰의 수익 구조를 떠받치는 핵심은 제품 판매 이후에도 이어지는 장기적인 고객 관계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2001년부터 표준 적용한 텔레매틱스 시스템 ‘콤트랙스(KOMTRAX)’다. 고마쓰의 건설기계에 탑재된 콤트랙스는 GPS와 통신 단말을 통해 장비의 가동 데이터와 고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해 최적의 유지보수 시기와 운영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나아가 이러한 데이터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건설 현장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 건설(Smart Construction)’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1위 캐터필러가 건설기계 자체의 성능과 내구성 강화에 강점을 보인다면 고마쓰는 건설 현장 전체의 최적화에 주력한다. 단순히 장비 성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의 사람·장비·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해 작업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자동화하는 스마트 시공을 추진하고 있다. 즉, 캐터필러가 ‘건설기계의 진화’를 이끈다면, 고마쓰는 ‘건설산업의 진화’를 추구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고마쓰는 경기 변동에 민감한 건설기계 산업에 속해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실적과 꾸준한 주주환원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아오고 있다. 연간 매출은 3조엔 안팎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 시장에서 발생한다. 특히 광산용 건설기계와 애프터서비스의 높은 비중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뒷받침하며, 경기 변동에도 비교적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앞으로의 승부처는 무공해건설기계의 적용 범위를 얼마나 빠르게 확대하고 실제 현장에 안착시키느냐다.
급성장하는 중국 기업의 추격을 넘어서는 기술 혁신과 학습 속도를 유지하면서, 건설 현장의 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을지가 향후 10년을 좌우할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