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침낭 놓고 납품업체간 '막장 로비'

2016-06-01 11:10:10 게재

감사원, 뇌물 받은 장성 적발

신형침낭 도입은 무산

방산비리는 군용 침낭·배낭·천막 등 장병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에까지 퍼져 있었다. 군이 업체의 로비를 받아 '무겁기만 하고 따뜻하지 않은' 침낭 등을 장병들에게 제공해 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확인됐다. 감사원은 이들 물품의 납품업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뒷돈을 받고 로비에 앞장 선 전현직 고위 장성 등 12명을 적발해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이 1일 발표한 '침낭·배낭·천막 획득비리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침낭 로비'가 격화되기 시작된 시점은 2010년이다. A군납업체는 무게 3kg에 달하는 기존 군용 침낭을 2.5kg 이하로 경량화하고 영하 20도에서 6시간 취침이 가능하도록 보온력도 강화하겠다며 국방부에 제안했다. 기존 B업체가 거의 독점적으로 납품중이던 군 침낭이 30년 전인 1986년 개발된 낡은 제품이어서 군내 불만이 높은 점을 노린 것이다.

당시 이미 민간에는 더 싼 가격에 품질이 좋은 제품들이 상용되고 있었다. 굳이 돈이 더 드는 연구개발을 택할 이유가 없었지만 군은 A업체의 개발제안을 받아들여 2012년 3월 과장급 실무협의회에서 이 업체의 침낭 37만개, 1017억원어치를 5년 이상에 걸쳐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이 석연치 않은 과정에는 당시 국방부 내 고위직에 있던 한 장군이 개입돼 있었다. 이장군(육사 33기)은 A업체로부터 3750만원의 금품을 제공받고 침낭 구매 업무를 책임지고 있던 당시 국방부 팀장을 2011년 8월 서울 강남구 일식집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새로 개발한 침낭을 빨리 채택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국방부 팀장은 바로 직후 침낭 관련 업무가 다른 팀 소관으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결국 2012년 3월 과장급 협의회에서는 새로 개발된 침낭을 구매하자는 일차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기존 침낭 업체인 B의 로비가 시작된다. B업체의 청탁을 받은 전 국방부 산하기관장(육사 31기)은 새롭게 침낭 관련 업무를 맡은 국방부의 국·팀장을 2012년 5월 만나 A업체를 비방하는 문서를 전달하고 "잘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국방부 팀장(육사 42기)은 A업체의 침낭 구매 결정을 취소시키기 위해 허위사실을 담은 보고서를 윗선에 전달했고 결국 2013년 4월 열린 국장급 심의회에서 침낭 구매 결정이 부결됐다.

그 결과 B업체는 기존의 무겁고 사용하기 불편한 기존 침낭을 2015년 7월까지 3회에 걸쳐 61억4674만원어치를 군에 납품할 수 있었다. 군 침낭 업체들이 전현직 고위 장성을 내세운 로비로 국방부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동안 병사들은 무겁기만 한 침낭을 사용해야 했던 셈이다.

개인전투용 천막과 전투용 배낭의 구매 관리도 엉망이었다. 한 군수업체는 이들 물품의 연구개발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군 관계자에게 300여만원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됐음에도 버젓이 새로운 납품계약(116억원)을 체결한 사실도 감사 결과 적발됐다.

감사원은 "침낭 등은 장병들의 전투력 발휘는 물론이고 생존성 향상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물품으로 신기술 신소재 제품을 확대 도입할 필요성이 커졌는데도 특정 업체와 군 관계자간 유착에 따라 시장질서 왜곡뿐 아니라 품질개선도 미흡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김형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