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인사청문회로 확인한 일그러진 '찬스의 시대'

재력·권력의 카르텔, '진학·직장·부의 대물림' 굳힌다

2022-05-19 11:35:25 게재

부모·조부모의 재력·직업에 의한 지위·인맥 활용해 자녀 지원

'권력과 부의 결합' 일반화 … '관료→김앤장→관료' 회전문 논란

"법 위반이 아니면 문제될 게 없다" 분위기 확산에 임명 강행

최근 유행하는 '찬스'라는 단어가 부모의 재산과 직업을 활용한 특혜라는 점에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지는 오래 됐다. 요즘 이 단어가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찬스'가 특정 부유층의 행태로 고정돼 사실상 양극화의 고착화, 계층 사다리의 붕괴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19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후보자에 대해 당 차원에서 '부적격' 의견을 굳혔고 가장 큰 이유로 '아빠 찬스'가 차지했다. 정 후보자가 경북대 의대 교수이면서 경북대병원 원장과 부원장으로 근무할 때 두 자녀가 경북대 의대에 편입으로 들어갔다.

5.18묘지 참배하는 한덕수 총리후보자 |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한 후보자는 절차를 다 밟지 않은 신분인 탓에 이날 기념일 하루 전 개인자격으로 참배하게 됐다고 밝혔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의대 편입·유학 과정에서 '아빠 찬스' 의혹 = 경북대 의대 편입은 경북대에서의 자원봉사, 정 후보자 동료 교수에 의한 면접심사, 지역인재특별 전형 도입, 정 후보자가 참여한 경북대 계절학기에 자녀 수강 등의 종합 결과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정 후보자의 아들은 또 이례적으로 학부생일 때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2010년 첫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5년만인 2015년에 아버지가 있는 경북대병원의 신체검사에서는 4급 판정을 받았다.

정 후보자는 "불법은 전혀 없다"며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도 있는데 그 속담의 내용을 지금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자진사퇴한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후보자 역시 자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빠 찬스'가 불거졌다. 풀브라이트재단 혜택으로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교수로 갔던 김 후보자가 한국풀브라이트 동문회장으로 있을 때 아들이 풀브라이트 혜택을 받았다. 배우자와 딸 역시 풀브라이트 장학사업으로 미국에서 교환교수 재직하거나 석사과정을 밟았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미국 정부가 세계 160개국에 각국 정부와 함께 출연해 운영하는 장학프로그램이다. 김 후보자는 "딸과 아들이 공정한 선발절차를 거쳤다"고 했다. 풀브라이트 박사과정 장학생으로 미국에 다녀온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경기도지사 후보)는 "이 후보자가 풀브라이트 동문회장과 장학기금을 운영하는 한미교육위원단 감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장학금은 어려운 학생을 위한 구제책으로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사회에 기여할 인재를 만들기 위한 제도인데 이를 모를 리 없는 김 후보자가 가족을 위해 찬스를 썼다고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에 따르면 김 후보자의 아들은 풀브라이트장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수들과 논문을 같이 작성했고 이 논문은 모건스탠리 한국사무소 인턴으로 들어가는 데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교수들은 김 후보자 딸과도 같이 논문을 썼다. 김 후보자 아들과 딸의 지난해 연구물에도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김 후보자 아들의 입사 과정에서 아빠 찬스는 물론 풀브라이트 관련 교수들이 논문 공저에 참여하는 등 불공정하게 인맥이 작동한 의혹이 짙다"고 했다. 딸이 강남 8학군에 진학하기 위해 생년월일을 바꿨다는 의혹도 나왔다.

◆논문 대필, 약탈적 학술지 논문 투고, 광고성 인터뷰 등 '입시컨설팅의 손' =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인사청문회 기간중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의혹을 받았다. 유명 국제고에서 해외유학을 위해 각종 활동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부모의 인맥와 지위, 재원이 투입됐다는 분석이다. 입시컨설팅 전문가의 손이 개입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자녀가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는 지적과 함께 적나라한 '그들만의 입시준비 상황'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후보자의 딸은 한 후보자 배우자의 대학후배가 임원으로 일하는 기업으로부터 중고 노트북 50대를 받아 복지관에 기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IEEE(전기전자공학자협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에 2차례에 걸쳐 1저자와 공저자로 '머신 러닝'을 주제로 한 논문을 제출했다. 전문입시컨설팅을 통해 공저자는 방글라데시 석사과정 학생에게 대필논문을 의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또 올 2월 세계 사회과학분야 학술논문데이터베이스 'SSRN(사회과학네트워크)'에 등록한 논문의 문서정보에 'Benson'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나와 '대필 논란'에 빠지기도 했다.

광고성 인터뷰 기사, 약탈적 학술지 논문 투고, 10개의 영어 전자책 출판 역시 전문적인 입사 컨설팅에 따른 대학입학용 스펙 쌓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외할머니 소유 건물에서 유학전문 미술학원의 도움을 받아 기획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한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논문) 그것은 입시에 사용된 사실이 없고 사용될 계획도 없다"면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아무에게나 주어진 일이 아니고 더 조심하면서 살겠다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 스카이캐슬"이라며 "이모 찬스, 엄마 찬스, 외할머니 찬스, 아빠 찬스까지 다 포함해서 스펙을 만들어왔다"고 했다.

◆인턴·무기계약직 전환 등 직장까지 = 법률사무소에서의 인턴 활동,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보인 '아빠 찬스'도 주목을 받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등학생 딸이 이 장관이 근무하던 대형 법무법인에서 인턴(실습사원)으로 일한 게 확인됐다. 이 장관은 장관후보자때 "학교가 운영하는 체험학습이었다"고 했다.

민주당 정일영 의원은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후보자의 둘째 딸이 공공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 파견 나간 지 1년 만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채용되는 과정에서 아빠찬스가 활용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필기점수에서 20점 만점 중 9.93점을 받았지만 정성평가인 면접에서 40점 만점 중 34.55점, 조직평가 항목에서 40점 만점 중 36.83점을 받아 최종 합격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추 후보자는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했다.

과거부터 자녀 병역 등에 부모찬스가 동원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아빠 찬스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공정'의 잣대였다. 조 전 장관후보자의 자녀들은 아빠찬스와 엄마찬스로 동원된 학회, 법률사무소 인턴 허위증명서 등을 대학, 대학원 진학과정에서 활용했다.

◆권력과 부를 한손에 = 부의 유지는 권력의 확보와 연결돼 있다는 점도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주목 받았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하거나 인준요청서를 보내면서 사실상 묵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후보자는 행정고시에 합격, 기획재정부에서 업무를 시작했고 경제부총리, 주미대사, 무역협회장을 지냈으며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며 부를 축적했다. 이후 다시 공직에 들어오기 위해 총리 후보자로 나섰다. 고위 공직자 이후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대형로펌에서 일한 후 다시 고위 공직자로 들어오는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또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경우 배우자가 대형 로펌인 김앤장에서 일하고 있어 이해충돌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인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장·차관급 고문은 선·후배 현직 공무원에게 '이 업체에 사정이 있는 것 같던데 편견 없이 들어달라'는 전화 몇 통 하고 시간당 수십만 원을 의뢰인에게 청구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인적 네트워크와 같은 공적 자산을 특정 업체와 자기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억대 연봉과 고액 자문료를 받아챙긴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했다. 한덕수 후보 청문위원인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과거 관직을 팔아 돈을 벌었다면 최소한 다시 공직을 맡을 생각은 버려야 한다"면서 "권력과 명예, 돈까지 다 가져야 속이 그렇게 다 후련하시겠느냐"고 했다.

적법한 행위는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 빈부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을 받는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불법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임명 강행의 근거로 삼았고 정호영 후보자, 한덕수 후보자, 한동훈 장관도 '위법은 없었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정 후보자는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자녀들의 경북대 의대 지원을 막지 않겠다고 했다. 여론조사도 정 후보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한 후보자와 한 장관의 임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사회적으로도 특권층의 합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분위기로도 읽힌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최근 수십 년 동안의 폭발적인 불평등 증가는 사회적 상승을 가속화시킨 게 아니라 정반대로 상류층이 그 지위를 대물림해 줄 힘만 키워주고 말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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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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