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칼럼

삼성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25-01-21 13:00:02 게재

컴퓨터를 국가 조직에 비유한다면 하드웨어는 국토 건물 도로 자동차 같은 것들이다. 이들 구성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구동시키는 법률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즉 소프트웨어란 헌법이나 법률과 같다. 하드웨어란 기계덩어리 혹은 돌덩어리인 반면 소프트웨어는 질서정연하고도 유연한 법의 체계를 갖고 있다. 이 법을 영어로는 프로토콜(규범) 혹은 알고리즘(해법)이라고 부른다.

컴퓨터 하드웨어에는 기억용 메모리칩과 계산용 비메모리칩 두가지가 있다. 따라서 기억칩과 계산칩을 유기적으로 작동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기억칩(메모리)에 저장돼 있는 데이터(숫자 문자 등)를 계산칩(비메모리)으로 가져와 계산(더하기 빼기)한 다음 계산된 결과를 다시 기억칩에 저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메모리도 비메모리도 누군가가 만들어야 한다. 또한 소프트웨어도 누군가 제작해야 한다. 이런 메모리 제작 업체로는 삼성전자가 있고 비메모리 제작 업체로는 인텔과 엔비디아가 있다. 비메모리에는 계산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계산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따라서 삼성같은 메모리 업체는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으나 인텔이나 엔비디아같은 비메모리 업체는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한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대표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윈도우고 구글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안드로이드다.

비메모리 선두 선언했지만 실천 못 따라

메모리에 비해 비메모리가 부가가치가 높고 또 비메모리에 비해 소프트웨어가 부가가치가 높다. 삼성은 메모리 설계 및 제작에 주력하는 업체다. 비메모리도 삼성이 제작은 하지만 주력제품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삼성이 아예 제작조차 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반도체(AI 칩)는 기억칩이 아니라 계산칩에 속한다. 즉 삼성은 비메모리를 주력하지 않았기에 역시 AI 칩에도 주력하지 않았다. 반면 엔비디아는 AI칩 설계에 가장 앞서 있는 업체다.

반도체 하드웨어(메모리 및 비메모리)는 제철소와 같은 거대한 생산공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첨단산업이기는 하나 굴뚝산업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소프트웨어는 공장시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첨단 두뇌산업으로 분류한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보다 부가가치가 1.5배 이상 높다. 삼성은 종합기업이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병풍식으로 혹은 문어발식으로 다방면에 사업을 펼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존 ‘굴뚝산업’ 중심의 삼성이 어떤 기준으로 리소스를 분배해야 할까. 삼성은 한 우물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그런 삼성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선언한 것이 있다. 메모리 강자인 삼성이 2030년이 되면 비메모리 분야에서 TSMC를 추월하겠다는 전략 계획이다. 그게 ‘삼성 2030비전’의 골자다. 그런 비전을 실현하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 없이는 강자가 될 수 없으므로 삼성이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든 아니면 인수합병하든 어떻게 해서든 소프트웨어 쪽 실천 로드맵을 작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후 삼성의 투자나 행보는 그에 부합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다른 분야인 바이오 쪽에 거대한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왔다. 삼성의 리소스 배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그렇다면 삼성을 포함해 한국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소프트웨어는 양파구조처럼 되어 있다. 반도체는 그렇지 않다. 반도체는 접시쌓기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반도체 구조를 스택(stack, 그릇쌓기)이라고 부른다. 반면 소프트웨어 구조는 양파껍질(onion ring)처럼 완벽하게 내포되는 구조를 갖는다.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는 하지만 바깥껍질 쪽에만 치중하는 게 문제이자 한계다. 맨 안쪽 소프트웨어를 소프트웨어 엔진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바로 윈도우 운영체계와 안드로이드 운영체계 같은 것이다.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는 모두 응용 소프트웨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운영체계는 미국 제품을 다 들여다 쓰고 있으며 그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다.

인선문화 안 바뀌면 SW 입국 불가능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기초가 약하듯이 IT에서도 기초가 부실한 이유는 안쪽보다는 바깥쪽에만 신경을 쓰는 까닭이다. 안쪽 소프트웨어를 첨단 소프트웨어라고 부르며 그것이 두뇌산업의 총아다. 첨단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엔진이라고 보면 되고 응용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바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부가가치가 판이할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는 두뇌산업인만큼 중요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을 잘 써야 한다. 기업이든 정부든 하드웨어 전문가만 등용해온 고질적인 인선 문화가 바뀌지 않고는 소프트웨어 입국은 불가능하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