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증시훈풍에 찬물 끼얹은 ESG 공시 후퇴

2026-03-03 13:00:02 게재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1, 2차 상법 개정 이후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입법은 주주권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정상화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하면서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와 진정한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의 진입이 기대된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로드맵 초안은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2028년부터 연결 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의무화하는 방안은 국제 기준과 속도에 비해 크게 후퇴한 안이다. 이에 해당되는 기업은 58개사,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약 6.9%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2025년 자산 2조원 이상 적용’ 계획과 통상적으로 대기업을 분류하는 기준을 자산 2조원으로 삼아온 관례에 비추어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글로벌 공급망의 직접적 경쟁국인 일본의 경우 2027년부터 자산 3조엔(약 27조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공시를 시작해 2028년에는 1조엔(9조1000억원) 이상으로 대상 기업을 확대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던 ‘스코프3(공급망 내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는 3년 유예가 적용돼 2031년부터 시작하도록 했다. 일본과 호주가 유예기간을 1년으로 해 예측 가능성을 높인 것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이미 우리나라 기업 중 2023년 127개, 2024년 158개, 2025년에는 222개사가 스코프3를 보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3년은 너무 길다. 이는 국제 정합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실착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성 정보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공시의 ‘실효성’도 문제다. 금융당국의 초안은 법정공시가 아닌 한국거래소 공시를 우선 전환 방안으로 제시했다.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거래소 공시는 근본적으로 ‘약한 공시’다. 허위·부실공시에 대해 금융당국이 직접 과징금이나 형사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 탓에 위장환경주의(그린워싱)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

국내 증시는 최근 3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연일 불장을 연출하고 있다. 코스피는 5000을 돌파한 지 한달 만에 6000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하지만 ESG 공시기준과 로드맵이 국제적인 정합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흐름과 동떨어지면, 글로벌 지속가능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강화되는 글로벌 기후·공급망 규제 속에서 한국 자본시장이 세계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ESG 공시 로드맵을 재설계해야 한다.

김영숙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