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홍길동법에 발목 잡힌 깜깜이 교육감 선거
지방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출마 후보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유권자들 관심이 아직은 미지근하지만 춘삼월 봄바람 불면서 서서히 달아오를 것이다. 지방선거에선 뽑고 뽑히는 자리가 지역마다 7개(광역 기초 교육감 등)씩이기 때문에 출사표를 던지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만 전국적으로 족히 1만여명에 이른다.
요즘 SNS에는 예비 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와 출마선언 소식이 줄을 잇는다. 후보자는 저마다 자신이 적임자라고 목청 높이고, 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논리와 이유를 들어가며 “그렇다” “아니다” 벌써부터 입씨름을 벌인다. 투표일이 다가오면 공방전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치열한 토론 속에서 유권자들은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선거는 현실에서 이와 거리가 있다. 민주시민이라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에 앞서 지혜롭고 소신 있는 판단을 내려야겠지만 이 과정을 훼방 놓는 요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개인의 정치 무관심과 집단의 선동 분위기, 맹목적 지역주의 등은 고질적인 ‘묻지마 투표’를 낳고 종종 민의의 왜곡을 가져온다. 선거의 부작용 또는 폐해라 할 만하다.
묻지마 투표가 특히 난무하는 선거가 지방선거다. 후보자 개인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 기초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으로부터 공천 받은 후보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를 준다.
이렇게 ‘공천=당선’이 공식처럼 통하다 보면 시 의원 자리에 얼마, 구 의원 자리에 얼마 하는 식으로 공천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진즉에 근절됐어야 할 공천뇌물 사건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원인(遠因)이 여기에 있다.
[깜깜이 투표 횡행하는 시도 교육감 선거 ]
지방선거 중에서도 시도지역의 교육감을 뽑는 선거는 아예 누가 누군지 모른 채 눈 감고 찍어주는 깜깜이 투표가 횡행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정당공천제를 적용하지 않다보니 모든 후보가 강제로 무소속 출마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정당의 교육감 선거 관여금지를 규정한 현행 법규는 매우 구체적이다.
“후보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추천받고 있음을 표방(당원 경력의 표시를 포함한다) 하여서는 아니된다.” (지방교육자치법 46조3항) 그러니까 정당공천은 고사하고 정당에서 활동한 과거 경력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된다. 이번 경기교육감 선거에 출마선언을 한 유은혜·안민석 예비후보나 임태희 현 교육감은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소속으로 장관 또는 국회의원을 지낸 사실이 있지만 본의 아니게 그 경력을 감춰야 한다.
정당 당원으로서 맡았던 자리는 아무리 화려하고 교육 전문성이 있다 해도 선거 공보물에 한줄도 기재할 수 없다. 남들이 알아서 인정해주면 좋지만 본인은 입도 벙긋 해선 안된다. 단지 ‘전 의원’이라고 표기하거나 대학총장 같은 비 정당 경력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는 홍길동에 비유되는 법이다.
정치 고관여층이라면 스스로 검색도구를 돌려 후보자 이력과 성향을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는 보통의 유권자들은 알 권리가 봉쇄되어 보이는 정보가 없을 때 어느 쪽으로든 선택하기 어렵다.
결국 선거 향배는 후보자간 철학과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후보단일화 여부에 좌우된다. 후보자들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쑥덕공론을 벌이고, 어느 날 누군가가 진보단일후보, 보수단일후보 타이틀을 들고 나오면서 진영 투표가 진행된다. 유권자들은 이 과정 어디에도 끼어들 틈이 없다. 온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은 멀어만 간다.
교육감 선거의 맹점이 어제 오늘 나온 얘기는 물론 아니다. 이 문제는 교육감 선거를 지방선거일에 맞추어 함께 실시한 2010년 이후 줄곧 제기되어온 해묵은 이슈다. 문제의 법규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가 기각된 적도 있다. 하지만 헌재 판단은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보다 특정 법규의 개폐 문제는 입법부 재량에 속한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마음먹기에 따라 당장에라도 법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유권자 관심 멀어져 ]
동시지방선거를 치르고 나면 교육감 선거의 낮은 투표율과 깜깜이 투표 문제가 판박이처럼 불거지면서 “이런 선거를 대체 왜 하나” 하는 비판여론이 나온다. 실제 개표결과를 들여다보면 시·도지사에는 투표하면서 교육감 투표용지에는 기표하지 않은 무효표가 매번 90만 표 이상 발견된다. “누가 좋은 교육감인지 모르는데 아무나 찍을 수는 없다”며 깜깜이 투표를 거부한 사람들이다.
이대로 가면 이번 6월 선거에서도 같은 사태가 되풀이 될 공산이 크다. 교육 소통령을 뽑는 중차대한 선거를 언제까지 이렇게 어리석은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