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텔 분리매각은 트럼프식 해법?
TSMC·브로드컴 인수설
파운드리·설계 부문 분할
미국 반도체산업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인텔의 분리 매각설이 나와 현실화할지 주목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인텔의 반도체 제조와 설계 부분을 분리해 매각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TSMC가 인텔의 파운드리(수탁생산) 부분을, 브로드컴이 칩 설계 및 마케팅 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WSJ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브로드컴이 인텔의 반도체 설계 및 마케팅 사업 부문을 면밀히 검토했고 자문단과 비공식적으로 입찰을 논의했지만, 인텔의 제조 부문에서 협력사를 찾는 경우에만 제안에 나설 방침”이라고 전했다.
롄허보 등 대만 현지 매체들은 17일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온 건 아니지만 TSMC가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에 따라 분사 예정인 인텔의 파운드리 서비스(IFS) 부문 주식 20%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가 분리매각을 위해 TSMC에 일부 지분 인수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8일 M&A 전문업체인 실버 레이크가 인텔의 프로그램 칩 사업부인 알테라(Altera)의 지분 인수를 위해 독점적인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인텔의 분리 매각설이 확산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3일 발언 이후다. 그는 이날 세계 각국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미국이 사용하는) 반도체는 대부분 대만에서 생산하며 일부는 한국에서 만든다. 우리는 그 회사들이 미국에 오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WJS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 인수에 TSMC가 나서달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텔에 실제 제안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고,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했으나 경쟁사 TSMC에 뒤처지며 경영난을 겪어왔다. 최근 인텔은 반도체 제조 부서를 분리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기업 해체의 신호로 해석했다.
인텔 인수는 미국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 2022년 반도체법(Chips Act)으로 미국 반도체 산업에 530억달러가 지원됐고, 인텔은 최대 79억달러를 수령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보조금에 합의하면서 파운드리 사업 분사 때는 지분이나 의결권 중 50% 이상을 매각할 수 없도록 했다. TSMC가 엄청난 자금을 들여 인수하더라도 1대 주주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로이터 통신은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기업이 인텔 공장을 운영하는 안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인텔 공장은 인텔 칩 생산을 목적으로 설립됐고, 최근에야 외부 고객을 위한 제조를 시작했다. 이를 TSMC 수준의 첨단 공장으로 전환하려면 인수 후에도 운영 자금이 더 필요하다.
TSMC측에서도 어려움이 따른다. WSJ는 “대규모 적자를 내는 인텔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70%가 넘는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를 넘어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년간 인텔은 인수설에 휘말렸으며, 겔싱어 전 CEO 하차 후 관심이 더욱 커졌다. 인텔의 시장 가치는 경쟁사보다 낮아졌으나, TSMC의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인텔의 경쟁력 저하는 TSMC·삼성전자에 뒤처진 제조 역량, AMD 등 경쟁사의 성장, AI 칩 실패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요 기술 기업들이 CPU보다 엔비디아 AI 칩에 투자하면서 매출이 저조해졌다.
이주영 리포터 123@naeil.com